Write/좋은 Books

성장소설-과거는 현재의 기억이다

하늘세상이다 2010. 4. 30. 13:53

 

"19세"와의 만남은 성장소설과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내가 다니는 대학의 동아리에서는 매주 금요일 책 한권을 정하고 토론회를 가지는데....올해 3월말에 내가 두번째 사회를 보게 되면서 선정하고자 한 작품의 테마는 성장소설이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의 추천작품들을 읽어보며 골라봤는데...그 중에 시간상 빨리 읽고 토론할 수 있는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로 토론회 사회를 봤던게 기억난다. 그 테마작품에 아깝게 떨어진(?) 작품중에 "호밀밭의 파수꾼"과 함께 이순원의 "19세"는 지금도 안타깝게 생각하며 다음을 기약하며 읽게 되었다. "19세"란 작품은 책보다 TV로 먼저 만났다. 구수한 강원도 사투리가 인상이 깊어서 무엇보다도 빨리 읽고 싶었다. 하지만 책으로 읽으니깐 그 어감을 많이 느낄 수 없어서 아쉬웠다. 손종일의 "어린숲"에서 나오는 경상도 사투리처럼 대화는 강원도 사투리 그대로 옮겨놨으면 하는 작가를 사랑하는 독자의 작은 바램이다.

성장소설만큼 우리를 순수한 흥분(?)으로 만드는 것이 있을까?


중1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받은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와 함께 그 이후로 성장소설을 주로 읽으며 좋아했었는데.(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성장소설은 다른 장르의 소설을 읽는 것 못지 않는 성장소설만의 매력인 "순수함과 호기심"을 품게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책으로 읽게 된 "19세"는 다소 선정적으로 그려질 수도 있는 성적 호기심과 경험들을 그 나이에 맞는 시선으로 그려내서 그런지 보는이로 하여금 건강한 웃음을 짓게 하는 것 같다. 작가 이순원만의 독특한 주를 달아놓은 것을 읽는 것도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13세에서 19세에 이르기까지 주인공 정수가 경험하는 새로운 세상에 눈뜨고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자신의 어린시절을 되돌아보며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나 싶다.

"19세"만의 독특한 세계와 성장소설이 안고 있는 시간이동의 딜레마


아마 이 책을 다 읽으신 분이라면 이 책의 저자가 정수와 동일인물임을 대충 짐작하셨을 것이라 본다. 그런데 왜 작가 이순원은 "나"라고 하는 1인칭 시점을 버리고 "정수"라는 또 다른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냈을까 하는 의문이다. 모든 작품에는 작품안의 주인공과 그 작품을 이끌어가는 서술자, 그리고 실제로 글을 쓴 작가와 이 세 개의 벽너머에야 독자의 눈이 있게 된다. 이러한 복잡한 시점의 그물속에서 만들어내는 다양한 해석은 곧 작품이 살아있게 만드는 생명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1인칭시점으로 주인공, 서술자, 작가가 일치되어 독자와의 일대일로 나누는 이야기전개가 안고있는 단순한 주고받기라는 문제
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소설본연의 허구성으로서 상상의 날개를 펴서 그려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작품이 성장소설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딜레마는 서술자가 13세에서 19세에 이르기까지 겪는 모든 이야기속의 정수라는 인물이 과연 어떤 기억이나 상상의 바탕속에서 작품전체를 이루어냈는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40대의 주인공이 과거의 자신을 현재와 자주 병치시켜놓는 것은 어쩌면 우리 자신도 어린시절을 회상짓는다는 것이 어쩌면 지금의 내가 기억하는 것과 실제의 과거 그 사이의 어쩡쩡한 거리유지가 만들어내는 모습들이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렇지 않은가? 나 역시 일기를 초등학교 5학년부터 써오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내가 기억하는 지난 시절의 모습과 일기가 기록해놓은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성장소설이 안고있는 기억회상의 진실성여부라는 문제라는 점에서 우리모두가 안고있는 어린시절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그렇지 않은 기록상의 이원성에서 갈등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도 관대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은 흩어진 기억의 조각들이 상상력을 바탕으로 창조의 옷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소설로서의 매력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19세"는 성장소설이기를 거부한다?


이 작품에서의 특별한 점은 단순한 성장과정만을 다룬 소설이 아니라 아이가 어른으로 되기위해서 필요한 성년식을 다루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강원도에서의 (그것도 몇십년전에 사라진) 농사의 문화중에 가져왔다는 발상이 무척 신선했다.
'공부하기 싫어 농사를 했다?' 지금의 도시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전혀 납득이 안 가는 문제이기도 하나 나로서는 무언가 이전의 아이가 아닌 어른으로서 인정받고자 노력해서 찾은 돌파구라는 점에서는 충분히 인정된다. 지금의 아이들이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로 조숙해져버리지 않을 수 없는 환경에서 과연 충동적이지 않는 책임감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을 많은 부모들에게도 작품속에 나타난 성년식은 정말로 현재의 문화로부활시켜야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드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는 현재의 미래


라고 말하고 싶다. 어린시절에는 아버지처럼 되기 싫다고 말하지만 점점 닮아가는 자신의 모습속에서 무엇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이순원의 19세는 단순히 19세라는 제목만 보고 읽는 것보다는 나의 사춘기시절과 함께 또 하나의(자기만의) 19세라는 작품을 만들어내며 읽는 것이 어떨까 감히 권유해본다. 어쩌면 기억조차 하기 싫은 시절일 수도 있고 아련한 기억이 풍기는 아쉬움과 간절한 그리움에 눈물짓는 감성파 사람들에게도 좋은 작품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19세"는 과거의 어린시절이 미래의 아이들에게 전해줄 현재의 부모님이 주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인상깊은구절

여기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있던 한 소년을 세상 밖으로 보낸다. 그는 왜 세상의 여자들에 대해 그토록 궁금한 것이 많았으며, 또 왜 그토록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했는지, 13세의 아침에서 19세의 아침이 되기까지 그의 몸은 어떻게 성장하고 그의 마음은 또 어떻게 성장하였는지, 그리고 무엇이 그를 그토록 일찍 어른의 세계로 내몰았는지. 어떻게 보면 그는 다소 불량했던 그 시절의 내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자, 이제 떠나라. 두려움 없이.
내 마음 안의 19세 소년.
내가 너에게 아픔과 슬픔조차 유쾌하게 말할 기운을 주겠다.
그리고 세상 끝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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