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편] 제주도에 뿌린 씨앗
확장이란 한편으로는 발전이지만 한편으로는 고생문을 더 크게 여는 일이다. 참으로 어려운 걸음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어차피 힘든 길이 될 것이라는 각오는 있었다. 조건이 갖추어진 위에서 시작한 것도 아니었고 재정적으로 단단한 기반 위에서 출발한 것도 아니었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그 일에 담긴 의미를 가장 큰 추진력 삼아 해 나갔을 뿐이다. 그래서 늘 돈은 벌기도 전에 쓰일 곳이 먼저 생겼다.
그때부터 나는 엄청나게 바쁜 삶을 살아야 했다.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도인이 뭐 그렇게 바쁘냐?'는 것이다. 범인(凡人)들의 희노애락이나 세상의 간난신고(艱難辛苦) 같은 것은 도인이 신경쓸 일이 아닌데, 세속의 일에 왜 그렇게 몸을 풍덩 담그고 있냐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도인은 물론 그런 게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는 도인은 자신의 운명과 인류의 운명을 일치시킬 줄 아는 사람이다. 아무튼 나의 생활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도인의 삶과는 정반대였다. 나는 일반 생활인이나 사업가들보다 훨씬 바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거의 선원에 머무를 겨를이 없었다. 단학의 붐이 불고 있는 것은 모처럼 하늘이 준 기회이니, 그 바람을 타고 전국 각지에 지원을 개설하기 위해 애썼다.지방에 가서 공개강연회를 하고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통해 지원 개설의 물꼬를 텄다. 1년도 채 되기 전에 전국의 지원은 10군데 가까이로 늘게 되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늘 길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6개월 동안 강연을 위한 출장만도 수십차례 다녔다.
그날 제주도에 가게 된 것은 제주도 경찰청의 고위직으로 있는 분의 초청에 따른 것이었다. 우연히 단학수련을 해 본 그 분은 더 많은 제주인에게 소개하고 싶다며 자진해서 어렵게 특별공개강연회를 주선했다. 나로서는 너무도 반가운 제안이었다. 안 그래도 나는 전국에 단학선원의 지원들을 개설하려고 백방으로 뛰고 있던 참이었다. 이번 공개강연회를 통해 제주도에도 단학선원을 열 수 있을지 모른다.
나에게 제주도는 특별한 곳으로 생각되었다. 제주도에 단학선원이 생긴다면 비로소 전국이 기로 연결된다는 큰 의미가 있다. 국토를 인체로 비유하면 전신의 주요 기혈이 비로소 눈을 뜨는 것이다. 아직 몇 안 되는 단학선원이지만 그래도 서울, 부산, 인천, 대구, 광주, 대전, 울산 등지에 열려 전국에 고루 분포하는데, 여기에 제주도를 더하면 국토 전체가 비로소 하나의 기맥 속에 들게 되는 것이다. 또한 해양으로 이 세상 모든 나라와 맞닿아 있는 곳이 제주도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그때만 해도 제주도는 육지와의 지리적 분리 때문에 문화적인 모든 혜택으로부터 멀리 있었고, 국가의 정책적 관심 대상에서도 대체로 소외되어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제주도는 성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땅이다. 나는 머지않아 제주도가 매우 중요한 곳으로 떠오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섬에서 세계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평화의 축제를 열고, 저마다 마음의 평화를 얻고 돌아가는 모습을 마음 속으로 그려 보았다.
나는 제주도로 출발 직전 집에 전화를 했다. 계속 지방 순회강연이 있었기 때문에 한 달 가까이 집에도 못 들어간 처지였다. 아내는 전화를 받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며 지금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작은 애 정원이가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으로 실려갔다는 것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얼마나 다쳤느냐?'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다녀와서 봅시다."는 한 마디와 함께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렇게 물어보았다가는 마음이 흔들릴 것 같아서였다.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지금 씨앗을 뿌리러 가는 사람이다.내가 차를 돌려 병원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미 일어난 교통사고를 어찌하랴. 그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하지만 나라고 아들 걱정되는 마음이 왜 없겠는가? 나는 그때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속으로 말했다.
"그때 모악산에서 제가 올린 기도를 들으셨지 않습니까? 저는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제주도 단학 공개강연회는 아주 성공적으로 끝났다. 강연이 끝난 뒤에는 강연을 주선한 분과 그날 강연에 참석한 제주도의 주요 인사들이 함께 하는 저녁 식사가 조용한 한식집에 마련되어 있었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강연을 들은 소감들이 오갔다.
"오늘 강연 정말 인상깊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그렇게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제주도 사람들도 단학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없겠습니까?"
내가 대답했다.
"물론 있습니다."
나는 주머니에서 오늘 받은 강연비를 꺼내어 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의 면면을 뵈니 제주도를 대표하는 중요한 분들이 많이 오신 것 같습니다. 아마 다시 이렇게 모이기도 힘들 것입니다. 저는 이곳 제주도를 사랑하고 이곳에 단학선원을 열고 싶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제게 주신 강연비를 제가 종자돈으로 내놓겠습니다. 저와 뜻을 같이 하시는 분이 있다면, 함께 마음을 내어 주십시오."
이렇게 하여 그 자리에서 제주도에 단학선원을 개설할 수 있는 자금이 모금되었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 정원이가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내는 그 뒤에도 여러번 그때 일은 정말 용서가 안 된다고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때 "강화도 마니산에서 우리가족을 하늘에 바쳤고, 하늘이 보살필 가족이니 걱정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응수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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