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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편] 선경의 직장수련

하늘세상이다 2010. 8. 12. 10:39

아직 20여개가 안 되는 선원을 힘겹게 운영하고 있을 즈음, 어려운 선원의 재정에 숨통을 틔워 주는 희소식이 하나 날아들었다. SK의 전신인 선경그룹의 고 최종현 회장으로부터 단학수련 개인지도를 맡아달라는 의뢰가 들어온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에 단학을 지도해 줄 만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평소 선도수련에 관심이 컸던 최회장은 기업인다운 주도면밀함으로 여러 후보들을 검토한 뒤, 당시 선경의 비서실장이 나를 찾아왔고 본인이 직접 단학수련을 경험해본 후에 최회장에게 나를 소개했다.


단기간의 수련으로 큰 효험을 본 최회장은 재계의 다른 인물들에게도 수련을 권했다. 덕분에 나는 나중에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 회장을 비롯한 여러 기업인들을 개인지도하게 되었다.


정 회장은 여러모로 매력적인 성품의 경영자였지만 단학 지도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다지 성실한 수련생은 아니었다. 그에 비해 최 회장은 가르치는 내가 감탄할 정도로 정말 열심히 수련을 했다. 최 회장은 또 선경의 직원들에게도 수련을 권장하다가 아예 회사의 연수과정 속에 단학수련을 포함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선경에 직장 선원이 생겼다. 나는 선경 직장 수련을 이끌기 위해 단학선원의 지도자를 파견하는 방식의 제휴를 맺었다.


이로 인해 단학선원의 재정적 여건은 단기간에 좋아지게 되었다. 선경 측으로부터 매달 받는 지도비가 당시로서는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그 동안의 재정적 압박이 해소되면서 이제 한 시름 놓았다고 생각할 무렵,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파견된 한 제자에게 선경 측으로부터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 제자는 내가 가장 믿고 아끼는 제자 중의 한 명이었고, 당시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제자였다. 하지만 평소의 성품으로 보건대 그는 그런 제의에 쉽게 움직일 만한 인물이 아니어서 나는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그런 스카웃 제의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나 자신도 한때 스카웃 제의를 받았으니까.


최 회장은 나에게 묻곤 했다.


“이 선생, 단학선원 운영은 잘 되시오?
“늘 어렵죠.”
“고생하지 말고 선경에 와서 직장 수련을 아예 전담하는 게 어떻겠소? 그럼 내가 큰 체육관을 하나 지어 주고 평생 편하게 살게 해 주겠소. 지금보다 훨씬 나을 거요.”


단학선원을 접고 아예 선경 안으로 들어오라는 얘기였다. 물론 나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제안이었다. 최 회장 말대로 적어도 내 개인의 재정 상태는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아니, 왜 안 된다는 거요? 내 제안이 너무 약소해서 그러시오?”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저는 좋은 체육관이 필요해서 이 일을 하는 게 아닙니다.”
“큰 체육관을 지어 주겠다 해도 싫다니, 도대체 원하는 게 뭐요? 뭐든 말해 보시오. 내가 할 수 있는 거면 해 주리다.”
“아, 회장님이 꼭 도와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습니다.”


나는 최회장에게 한문화원의 사단법인 등록을 도와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당시 내 염원 중 하나는 단학을 학문으로 발전시키고 사회로부터 공인을 받아, 제자들이 당당하고 떳떳하게 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었다. 최회장이 도와준 덕분에 그렇게 고대하던 사단법인 한문화원이 당시 문교부에 공식 등록되었다.  나는 하늘을 날아갈듯이 기뻤다.


그런데 직장 수련을 시작한 지 1년 여 만인 어느 날 갑자기 선경 측으로부터 일방적인 중단 통고가 날아들었다. 최 회장의 개인지도는 그보다 앞서 끝나 있었다. 이미 최 회장은 직원들 앞에서 몸소 수련 지도에 나설 만큼 자신의 경지에 대해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믿었던 그 제자도 결국 내 곁을 떠나 선경의 옷을 입었다.


나와의 신뢰를 저버린 선경측에도 섭섭한 마음이 물론 컸지만, 그 제자로 인한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선경과의 교육 제휴가 이처럼 갑작스럽게 끝나자 그 충격은 곧 재정적인 압박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큰 수입이 끊기는 바람에  나는 석 달 동안 지도자들의 월급을 줄 수가 없었다.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단학선원이 설립된 후 금전적으로 가장 어려울 때였다. 그때 옆에 있던 벽운선사가 괴로워하고 있는 내게 했던 얘기가 지금도 생각난다.


 “스승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들이 여기 돈 때문에 있는 것고 아니고, 편하려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몇 달 힘들어도 참을 수 있으니, 힘내세요.” 


나는 그때 한 조직이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면 얼마나 불행한지를 뼈속깊이 깨달았다. 세상의 어려움 속에서 나와 민족과 인류를 살리겠다는 비전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우리  힘으로 자금을 마련하고 우리 힘으로 비전을 달성해야겠다는 교훈을 뼈에 새기는 시간들이었다.


관리와 운영을 정말 악착같이 했다. 수련단체의 리더인 내가 돈을 벌고 관리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비난을 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나는 그런 비난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었기 때문이다.



출처 : 일지희망공원 > 일지 블로그
http://www.ilchi.net/Story/3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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