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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경영자의 모델, CEO 이명박의 가치창조 이야기

하늘세상이다 2010. 5. 22. 21:16

 

민주화와 경제성장

이 두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민주화가 경제성장을 비판하고

경제성장이 민주화를 비판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둘 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명박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를 통해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우는 대한민국의 고속성장의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뽑힌 2002년은 더이상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이 아닌

사람사는 세상을 원해서 탄생된 것입니다.

 

하지만, 참 아이러니컬하게도 2007년에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뽑힌 것은

그때와 달리 사람들이 성공해서 보다 더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반영된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이분법적으로 단정지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무시 못하는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이명박의 자서전은

국민에게 도움이 된다가보다

샐러리맨들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민주화와 경제화는 서로 가치 지향점이 다릅니다.

따라서 어느 편에 서 있는지는 자유이지만, 서로 비난보다도

상호 보완속에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손을 맞잡는 지혜가 있어야할 것입니다.

 

요즘 남북관계를 대하는 정국을 보면서

1995년도에 이명박의 자서전인 <신화의 없다> 마지막 장은

"북한을 열어야 21세기가 열린다" 라고 했는지 참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한 회사를 자유롭게 이끌어가는 경제적인 CEO로서 보는 것과

자신을 지지하는 집단의 이익속에 단선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정치적인 CEO의

차이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정치와 경제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니깐요.

 

말단 직원에서 대기업의 회장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CEO 이명박.

그의 정치인생도 후세에 귀감이 될 수 있도록 더 귀를 열고 더 품어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좋은 책입니다.

 

*주요내용


1. 어머니의 기도


우리 식구의 하루 일과는 새벽 4시에 시작됐다. 그 시각에 어머니가 우리 형제들을 전부 깨워놓고 새벽 기도를 드렸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기도는 독특했다. 나라와 사회가 불안하지 않도록 기도한 후에 일가 친척들의 안녕을 부탁했다. 그 다음 동네 이웃들의 행복을 빌었다. 아픈 집, 실패한 집, 옆집과 싸운 집 등을 일일이 대면서 다 잘되기를 빈 다음, 예수님을 믿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그리고 나서야 우리 형제들의 이름이 나왔다. 정작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한마디의 기도도 하지 않았다. 우리 자신의 삶이 너무 힘들었지만 언제나 남에 대한 것이 먼저였다.

 

2. 돈도 백도 없이 학생회장 출마


나는 서클 활동도 할 수 없었으며, 친구도 사귈 수 없었다. 그 흔한 동창회도 나에게는 없었다(동지상고 야간에서 대학에 들어간 학생은 개교 이래 내가 처음이었다). 고향이 같은 친구만 몇 있을 뿐이었다. 내 존재를 아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상대 학생회장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 중고등학교 때에도 나는 여러 사람 앞에 나가 내 의견을 펼쳐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 탓이었다. 안으로만 움츠려드는 내 성격을 바꾸고 싶었다. 나 혼자만의 세계를 벗어던지고 세상 속으로 나가고 싶었다.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나를 개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선심 쓸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선이 된다면 무엇보다 먼저 대학다운 대학, 학생다운 학생을 위해 온 힘을 쏟겠습니다. 공부하고 싶은 학생이 공부할 수 있는 대학을 위한 순수한 일에 전념할 것입니다.” 나의 연설은 투박했지만, 진지하고 정직했다.개표결과 나는 40표라는 근소한 차로 당선되었다. 내 생애의 대전환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3. 대일 굴욕외교 반대를 위한 6.3 시위 주동자 서대문 형무소 수감과 어머니 면회.


어머니는 내가 감옥에 있는 동안 딱 한번 면회를 했다. 1964년 말이었다. 어머니는 수염이 더부룩한 내 입 주위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명박아, 나는 네가 별 볼일 없는 놈인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너야말로 대단한 놈이더구나. 나는 네 소신이 옳다고 생각한다. 네 소신대로 행동하거라. 어미는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어머니가 면회와서 한 말은 이것이 전부였다.

 

4. 현대의 입사와 함께 맞게 된 금고사건


현장 내부에서 갈등이 고조되던 어느날 저녁이었다. 나는 사무실에 앉아 밀린 장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갑자기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밖을 내다보던 타이 인 경리가 나를 향해 다급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미스터 리, 빨리 도망가.”
밖을 내다보니 한국에서 온 인부들이었다. 그들은 군용 단도를 들고 회사 집기들을 다 뒤집어엎었다. 폭도들의 난동이었다. 낌새를 눈치 챈 현장의 간부들이 자동차를 타고 달아나는게 보였다. 한국인은 나를 빼면 모두 ‘폭도’들 뿐이었다.
“야. 좋은 말로 할 때 금고 열쇠 내놔.”
“못 내놓겠다.”
“어? 너 죽고 싶냐?”
그들은 칼로 내 얼굴을 그을 듯한 기세였다.
그들은 단도 위협이 별 효과가 없자, 나에게 금고를 가리키며 직접 열라는 것이었다. 금고쪽에 있던 두 사람이 길을 터주었다. 나는 서너 걸음 걸어 금고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그 금고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야, 뭉개버려.”
몇 개의 손이 내 뒷덜미를 잡아챘다. 나는 사무실 바닥으로 쓰러졌다. 나는 책상에서 떨어져 금고를 안고 엎드렸다. 발길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안고 있는 것은 금고가 아니라 나의 자존심이었다. 옆구리와 등, 엉덩이, 온 몸에서 불이 났다. 그럴수는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금고를 끌어안았다. 이사건은 방코지사와 서울 본사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경리 사원 이명박이 목숨을 걸고 혼자서 금고를 지켜냈다.”

 

5. 말단직원이지만 할말은 한다.


5시경 이윽고 정주영 사장이 사무실을 둘러보러 내려왔다. 나는 오래 담아 두었던 말을 꺼냈다.
“사장님, 이 공사, 이익이 많이 남습니까?”
“그런 걸 자네가 왜 묻나?”
“일개 말단 경리 사원으로 공사 윤곽이나 진행과정을 종합적으로 볼수는 없지만, 제가 어림짐작해 볼 때 이 공사는 밑지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손해는 앞으로도 크게 늘어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아니야, 이 군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거야. 이익이 남아. 내가 알아 다 보고를 받고 있어.”
정사장은 곧 귀국했다. 나는 내 예측이 틀림없는 것 같아 내가 입수할 수 있는 자료를 총동원했다. 집계를 내고 문제점 분석까지 덧붙여 경리과장과 관리부장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상관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말단이면 말단답게 자기 일에나 충실하라는 것이었다.
정 사장은 지난번 폭동 때보다 더 신속하게 현장으로 날아왔다. 본사 감사팀까지 대동했으니, 현장은 발칵 뒤집혔다. 정사장은 누군가가 공사 대금을 빼돌린 사고로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당연히 자금을 담당하는 관리부 세 직원이 먼저 조사를 받았다.
그 날 밤 감사 팀은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이 군 자네가 이 현장을 책임지면 어떻겠어?”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부장, 과장은 오늘부로 본국으로 가. 자네가 그들을 일을 맡으라고 말이야.”
“그렇다면 새 부장, 과장님이 오셔야죠.”
“그럴 필요 없어. 이 군 혼자 할 수 있다. 나쁜 놈들 말이야, 사원만도 못해. 이 군이 귀국해서 밑에서 일할 사람을 직접 데리고 와.”
난 끝까지 사양했다. 파격이라고 해도 지나친 파격이었다. 조직의 질서가 깨지는 일이었다. 이런 파격은 뒷날 내가 부장, 이사, 사장으로 발령 날때도 그랬다. 밖에서 보기에는 파격이었지만 정 사장에게는 지극히 합리적인 인사였다. 능력 우선주의, 경력이나 나이를 뛰어넘어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보고 자리를 마련해주는 진취적인 생각은 기업인 정주영 사장의 가장 큰 장점 가운데 하나였다.

 

6. 고속승진의 배경


나는 회사 돈을 내 돈으로 생각했지 한번도 남의 돈, 정주영의 돈으로 여긴적이 없었다. 일과 회사의 주인이 바로 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74년 1월 정기인사에서 나는 전무로 승진했고, 이듬해에는 부사장에 올랐다. 1965년 ‘건설은 창조’라며 입사한지 꼭 10년만이었다. 나이와 연공서열이 지배하는 원로 사회에서 나의 고속 승진은 파격이었다.
“이명박이란 사람, 정 회장의 친척 아닐까? 친척이 아니라면 정회장의 약점을 단단히 쥐고 있을 거야.”
“아니야, 그 친구 박 대통령이 뒤에서 강력하게 밀고 있다던데.”
이 루머에 대하여 정 회장은 “이 이사를 내가 언제 승진시켰어? 당신은 당신 스스로 진급한 거야. 세상이 그걸 모르고 찧고 까부는 거야.” 라며 웃어넘길 뿐이었다.

 

7. 실패에서 교훈


교훈은 성공이 아닌 실패에서 나온다. 그러고보면 사람들이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을 더 오래 기억하는 속성은 참 다행스러운 것이다. 성공은 자신이 간직할 필요가 없다. 성공은 타인들이 기억해 준다. 그러나 실패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이 기억해야 한다. 실패를 망각하는 사람은 또 실패한다.

 

8. 경쟁상대는 기업주


20대 이상, 30대 사장, 40대 회장으로 표현되는 고속승진의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곤혹스럽다. 나의 직위와 직책은 내가 일하는데 필요한 것이었지, 무슨 다른 이유는 없었다.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기업주의 판단이었다.
나는 입사 12년만에 사장에 올랐다. 그러나 나의 12년은 보통 사람의 12년이 아니었다. 공휴일도 없이 하루 18시간 넘게 일했으니 남들보다 두 배는 일한 셈이다. 이렇게 보면 나는 24년만에 사장이 된 것이니 남들보다 빠르다고 할 수 없다.
사람들은 대부분 기업주나 상사로부터 어떤 사업을 추진하라는 지시를 받으면, 일반적으로 그 사업 앞에 가로놓인 난관을 먼저 나열한 뒤, 현재의 인력, 자금, 기술, 정보 등이 또한 얼마나 열악한 가를 설명하낟. 실패할 경우 자신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일이 성사되면 성사된대로 큰 소리를 치고, 또 실패로 돌아갔을 때는 “그것 보세요. 처음에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라고 말할 수 있도록 복선을 깔아두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기업주의 목표보다 훨씬 높은 목표를 제시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내가 정 회장 앞에서 내놓는 사업방향이나 방법, 목표, 문제 해결의 범위 등은 늘 정 회장의 기대치를 한걸음 앞선다. ‘더 이상의 적자가 나지 않도록 관리해 달라’고 정회장이 주문하면, 나는 적자가 아니라 흑자가 날 수 있는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고, 그 목표를 달성한다. 이때 발생한 이윤은 온전하게 기업주의 몫이다.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성취감이다. 나는 그 성취감을 위해 일했다. 나중에 생색내기 위해 목표를 일부러 낮게 잡는 것은 스스로 주인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주인은 목표상의 수치에 연연해하지 않고 오직 이윤의 극대화에만 관심을 쏟는다. 그리고 타인에는 신경 쓰지 않고 일 자체와 치열하게 싸울 뿐이다.
동료가 아닌 기업주를 경쟁 상대로 삼아라. 기업주처럼 생각하고, 기업주처럼 일을 찾아다니고 그것을 장악하라. 그리고 기업주보다 높은 목표를 설정하라. 정 회장이 위기에 부딪힐 때마다 나를 찾은 까닭은 ‘이명박은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회사를 자기 것으로 안다’는 인식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9. 얼굴콤플렉스


그녀를 만날 때마다 나는 내 얼굴이 못생겼다는 것이 괴로웠다. 나는 어릴때부터 집안에서도 ‘형제 중에 명박이가 제일 못생겼다’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고,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녀 앞에서는 더욱 ‘못생긴 얼굴’의 콤플렉스가 살아나곤 했던 것이다.

 

10. 청부론


공직자 재산 공개가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을 때, 한 TV 방송사의 60분 짜리 토크 쇼에 나간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청빈론이 아니라 청부론임을 강조하며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