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흥행에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한 영화 <집행자>.
지금까지 많은 영화에서는
교도소라는 공간에서 보통 죄수들의 이야기(탈출기)를 많이 다루었습니다.
영화 빠삐용도 그렇고 쇼생크탈출도
인간의 자유를 향한 끊없는 도전을 갖게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죄수도 아니고 피해자도 아닌
그 중간의 쇠창살과 같은 존재인 교도관을 다루었습니다.
법을 집행하는 자.
라는 이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는 의무만 있지 그 어떤 권한도 없습니다.
바로 이 점이 비극을 낳습니다.
살고 싶어하는 것은 생명의 본능이고
그 살고 싶어하는 생명을 법이라는 올가미로 목을 메게 합니다.
하지만, 고귀한 판사나 성직자들은 쳐다볼 뿐.
그 올가미를 메고 사형시키는 이들은 교도관들이 합니다.
그 누구도 죽이고 싶지 않는 사형제도.
그 사형제도가 살인자도 아니고 판사도 아닌
교도관의 삶을 옮아맵니다.
수많은 갈등속에 해결은 막혀있고
교도소를 떠나는 것은 죄수가 아닌 교도관이라고 보여줍니다.
교도소를 지켜야될 교도관이 교도소를 떠난다?!
이 아이러니컬한 상황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인간이 만든 제도가 오히려 인간의 목줄처럼 오도가도 못하게 합니다.
집을 지키는 개처럼 동물원의 사육사처럼
교도관의 삶이 정의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저는 사람을 바꾸는 것은 제도가 아니라 의식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교도관들도 처음으로 부임할 때 꿈이 있었을 것입니다.
법의 하수인이 아니라 죄수들을 교화하고 재범율이 낮은 교도소로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서 미국 CNN에서도 취재했던 필리핀의 교도소를 대안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죄수들의 의식을 바꾸기 위해 수빅 지역에 있는 교도소에 한 소장이 부임하면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냅니다. 그것은 죄수들을 매일 연병장에 모아서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별거 다 시키네’ 하면서 잘 호응하지 않던 죄수들이 점차 춤추는 재미를 붙이게 되었고, 실력도 제법 늘었다고 합니다. 죄수의 가족들을 면회초청해서 춤추는 죄수들의 공연도 관람하게 하면서 서로가 마음을 열리고 교도소의 분위기도 변화되었습니다.
억압과 통제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춤추고 놀게 하니
심리적인 안정감은 높아졌고 자연스럽게 재범율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똑같은 공간에서도 교도관들이 죄수처럼 생각마저 갇혀버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공간을 새로운 아이디어로 재탄생시킬 수 있는 것도 인간의 '뇌'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집행자.
참 좋은 영화입니다.
'Write > 좋은 Cul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모잃은 오누이의 가슴아픈 제자리찾기 (0) | 2010.06.01 |
---|---|
색다르고 파격적인 매튜본의 백조의 호수 (0) | 2010.05.25 |
꼭두박물관, 김옥랑관장님의 30년 역사가 살아숨쉬는 곳 (0) | 2010.05.04 |
EBS 한반도의 매머드 3부작을 보고나서 (0) | 2010.05.01 |
영화 블라인드사이드 (0) | 2010.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