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 물리학자와 정신과학자
형은 정신과학자이고, 동생은 천체 물리학자이다.
이들이 인간세계에서 최고를 자처하고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케이팩스의 주인공 [프롯(케빈 스페이스역)]이 이들과 상대해준다.
자신이 지구에서 1천 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케이-펙스라는 행성에서
왔다고 하는 것을,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여 천체 물리학과의 승부에서
동생은 지고만다. 그런데, 아직 형(상대역, 제프 브리지스역)이 남아있다.
정신과학은 미지의 영역이라 승부해볼만하다.
정신과학이 그나마 인정해주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최면술이다.
인간의 꿈과 같은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본 것이다.
그런데 형이 프롯으로부터 전해들은 과거의 이야기를 증거삼아 멕시코로 전철타고,
비행기타고 차를 몰고 도착하여 찾아내고 다시 돌아와 끝까지 물고 늘어진 이는 다름 아닌
자살하고자 했던 로버트 육체였음을..영화가 끝나고 휠체어를 밀면서도 모르고 있다.
빛으로 존재하는 영혼의 세계
영화 파우더를 본적이 있는가
빛으로 태어나서 빛으로 돌아간 몸조차 하얀색이었던 파우더의 주인공 제레미 리드
[프롯]도 영화 파우더의 주인공처럼 빛의 존재이다.
공항의 대합실에서 빛과 함께 갑자기 출현하였고
그의 임무를 마친 뒤에는 정신병동에서 다시 빛과 함께 사라진다.
여기서 외계의 존재는 물질적인 몸이 아닌
빛에너지와 같은 영적인 상태임을 말해준다.
다만 몸이라는 공간을 빌어서 그때 환경에 따라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다.
외계인들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처단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는 많은 영화에서는 인간의 몸에 들어오는데
다시 나올때도 여전히 몸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외계인들은 녹색피를 가진 파충류이거나
곤충류를 많이 닮아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말해 인간의 세계에서 더럽다거나 무섭게 여기는
생물체를 외계인도 마찬가지로 동일화하여 만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ET 보다도 한단계
더 진보된 영화임을 알게 한다.
빛의 광속을 타고 이동하려면,
빛의 존재와 같이 되어야하기에..
영화가 주는 과제들
인간의 감독으로 외계인을 다룬 영화라서
단점이 될 수 있는 것인데,
바로 인간은 하등동물이고, 외계는 고등동물이다.
곧 다윈의 진화론처럼 인간은 인간이란 조건을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로만 여긴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한번 정신병동(인간의 세계)에 갇히면
관리자들(인간의 세계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에게 영원히 보살핌을 받고
길러진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누구도 상처를 치유받지 못하고
있으며 관리자도 그것을 알면서도 어쩌지 못한다.
바로 이점을 다시한번 인식시키고 위해
외계인이라는 제3자를 데려온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에서 외계인이 어떤 불가사의한
건물을 지었다느니 메세지를 주었다느니 하였지만
실제로 그들이 전적으로 지구의 경영에 관여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시말해, 지구의 문제는 지구인 너희들이
책임지고 해결해야된다는 사실이다.
영화는 [프롯]이 잠시 머물다간 로버트의 상처가득한 몸을
태운 휠체어를 열심히 밀며 혼자서 말하고 대답하는 박사의 모습에서
현실을 보라고 말하고 있다.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몸조차(하물며 가족은 어떤가) 돌보지 못하면서
남을 돌보겠다고 하고, 환경을 보호하겠다고 하고 나서는 모습이
얼마나 앞뒤 안 맞는 무모함이고 어리석음인지를 깨우쳐주고 있는 것이다.
영화 컨텍트에서 조디포스터는 저기 무수히 많은 별들중에서
지구만이 생명이 존재하고 있다고 하면 얼마나 공간낭비인가
관객들에게 물은적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관객은
"뭐 있겠지" 라며 대충 긍정하고 극장을 나왔을 것이다.
그래서 그 영화는 그것이 한계였다.
그런데 이 영화는 외계인이 있냐 없냐는데는 별 관심이 없다.
정신병동이란 작은 인간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상처속에 갇혀있는지, 그리고 같은 인간이면서도 서로 소통하지도
못하고, 그것을 정신과학으로 해결하겠다는 사람들은
또 어떻게 관리하려고 하는지 그 다양한 군상을 보여주고 있음이다.
바로 누구를 통해서
70억이 넘는 지구인중에서도 아닌, 저 머나먼 외계에서
잠시 탐사하러 놀러온 [프롯]에 의해서 말이다.
그래서 슬프다.
그것은 자신의 몸은 자신의 자연치유력으로 충분히 나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남의 손에, 병원에 맡긴채 불안에 떨고 있는 모습이나..
한 나라의 여러가지 문제들을 국민들이 단합하여 극복할 수 있는데도
남의 나라의 돈이나 외국인들에게 의존하다 결국은 식민상태가 되는 모습이나..
인류가 만들어낸 물질문명이 모두가 공존공영할 수 있음에도
테러와 전쟁으로 그리고 환경파괴가 몰고온 재난으로 공멸해가는 지구의 모습들..
이 모두를 다 알면서도,
이 썬글라스 낀 낯선 외계인에게
우리 자신의 치부를 비춰봐야 된다는 부끄럼이다.
정신병동의 단 한사람, '고향이 없어요' 라고 글남긴 베스만
케이팩스로 데려가고 그는 없다.
단지 로버트라는 육체만 남겨뒀다.
그것은 인류에게
이 수많은 지구의 문제들이 산적해있음에도
외계의 생명체가 있는 별을 찾기만 하면
이 지구별을 버리고 도망갈 생각하지 말라고
가정을 버리고 새가정을 차리면 행복한가
이 나라를 버리고 이민가면 행복한가
지구를 떠나면 새로운 행성에서도 행복한가
묻고 있는 것이다.
대답하지 못하면
그 세번째 과제가 무엇이냐고 물었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다시한번 떠올려보라.
그가 바로 인류의 모습이고 선택인 것을..
할아버지는 파랑새를 찾아
인류가 버리고 포기한 희망을 찾았고
그것을 모두에게 증명해주었다.
이제 그 파랑새는 [프롯]과 함께(눈에 보이는)
떠나버렸지만, 희망(눈에 안 보이는)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직 우리는 지구별에서
해야될 일이 있다는 것을, 그만한 존재가치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선택하여
행동하는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분명히 병동을 벗어나서
자신의 일을 찾아 지구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리라.
나도 그러리라.
그래서 이 영화는 보고나면
새로운 삶의 의욕과 희망을 현실에 구현해보고 싶은
용기가 솟아나리라
그래서 [케이팩스]는 다시 보고 싶은 것이다.
왜냐하면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 자신에게
힘이되었던, 다시 일어나게 만들 수 있는 것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당신에게도 그러한 보물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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