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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편] 새로운 출발

하늘세상이다 2010. 7. 6. 14:17

"정한이, 정원이! 다리 아프냐?"
나는 아이들을 불러 세워 물었다. 두 녀석이 약속이나 한 듯이 대답했다.
"네! 힘들어요."


우리 가족은 눈 쌓인 강화도 마니산을 오르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는데 눈이 많이 쌓여 발목까지 푹푹 빠졌다. 처음에는 영문도 모르고 신이나서 올라가던 아이들은 산 중턱쯤에 이르자 숨이 턱까지 차서 보채기 시작했다.


정한이 녀석이 물었다.
"엄마, 꼭대기까지 가려면 얼마나 남었어?"
"응, 다 왔어. 조금만 더 가면 돼."
아내는 조용히 아이들을 얼렀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체념한 표정이었다. 가끔씩 조용히 긴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계속 움직이니까 그리 춥지는 않지?"
나는 두 녀석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물었다.
"예."
 "그래, 그럼 계속 올라가자."


우리는 마침내 마니산 꼭대기 첨성단에 올랐다. 일망무제로 시야가 트인 겨울 하늘이 푸르렀다. 나는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제단에 올라가 무릎을 꿇었다.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단학선원 개원을 앞두고 가족들을 데리고 오른 마니산 첨성단


"하늘이시여, 가족을 돌보는 일만 하라고 해도 벅찰 나같은 사람에게 당신은 엄청난 사명을 안겼습니다. 좋습니다. 저는 당신이 준 그 사명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하자면 제 가족을 보살피는 일은 아마도 잘 못할 것입니다. 제가 하늘의 일을 하는 대신 하늘은 제 가족을 좀 보살펴 주셔야겠습니다. 여기 제 가족이 있습니다. 이들을  당신께 맡깁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이제 나는 한 가정의 아버지가 아니다. 모든 것을 하늘에 맡겼다."고 말했다. 아내는 말없이 눈물을 훔쳤다. 영문을 모른 채 눈만 꿈벅거리며 나와 아내를 번갈아 바라보던 두 아이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었다.


내가 가족을 데리고 마니산에 올라 하늘에 심고를 올리게 된 이유는 딴 게 아니었다. 이제 곧 최초의 '단학선원(丹學仙院)'이 서울 신사동에 문을 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25평짜리 작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거기에까지 이르는 데만도 얼마나 많은 힘이 들었는지 모른다. 주로 공원이나 수련생들이 마련해준 임시 공간에서 수련을 지도하면서부터 5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내가 사람들을 찾아가야만 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는 상황으로 바뀌는 데 그만큼의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다.


세월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당시 내 형편에 혼자 힘으로 그런 공간을 열기란 불가능했다. 다행히 그 무렵 공원에서 수련하던 사람들 중에 나의 제자가 되어 평생 사명을 함께 하기로 결의한 사람이 여덟 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나를 포함한 아홉 사람이 100만원씩을 추렴해 비용을 마련했다. 그 돈은 평생 수련비로 생각하자고 했다. 수련은 잠깐 하다가 마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그 수련장의 운영은 공동으로 하기로 했다.


모악산에서 천지기운 천지마음을 깨닫고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사명을 받은 지 5년 만에,  드디어 최초의 단센터가 생겨났다. 나는 지금도 첫 단센터를 오픈하던 날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에 감회가 더 컸는지도 모른다.


내가 모악산에서 특별한 도력을 얻었고, 그 도력으로 많은 일들이 쉽게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깨달았기 때문에 고통이나 고민, 고생을 피해갈 수 있었다면, 정말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며 속으로 웃곤 한다.


깨달음은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깨달음 이후에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꿈은 있었으나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경험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었지만, 하늘을 믿고 무조건 부딪혀보기로 선택했다. 공원에 나가서 건강법을 가르치고 사람들을 만나고, 만나는 이들에게 내 꿈을 이야기하고, 그 꿈을 함께 할 사람들을 찾기까지 5년이 걸렸다.


당신에게 꿈이 있다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마라. 꿈은 오직 꿈을 꾸는 사람만이 이룰 수 있지 않은가?  그 꿈을 소중히 여겨라. 아무리 작은 발걸음이라도 좋으니, 그 꿈을 향해 한 반짝이라도 내딛어라. 그 작은 한 발짝이 당신에게 더 큰 한 발짝의 기회를, 용기와 자신감을 선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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