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연일 보도되어
관심을 가지고 스크랩해두었다가
오늘 찾아가 보게 된 영화 [하얀 아오자이]
사실 극장수도 서울에 2-3개 안팎이었고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관객도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남의 평가가 아닌
나의 주관하에 영화를 고르고 본다.
그래서 후회하는 것도 적다.
이 영화를 통해 베트남 여성의 아름다운 모성애
그 이전에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내가 알던 베트남
그것은 서양의 영화에 비춰진 왜곡된 모습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이념과 전쟁 그러한 갈등 때문에
가족은 흩어지고 상처를 입는 모습이 온전하게 그려져
나에게는 뜨거운 눈물이 되어 공감을 일으켜준 명작이다.
아오자이에 에워쌓인 채 군수집 앞에 버려진 '구' 와
역시 노예의 삶을 살고 있던 '단'이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도망친다.
그리고 베트남의 굴곡진 역사를 비처럼 모두 맞아가며
네 아이를 재첩을 팔며 연명해간다.
딸이 학교에서 입는 교복 아오자이를 사주기 위해
모유를 팔아서라도 보낸다는 모성애는 사실 한국도 그 이상이고,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검프의 어머니가 아들을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어떻게 했는지 안다면 이상하게 본다는 것이 오히려 부끄럽게 여겨야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행위에 도도한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 보다
어떠한 마음으로 그러한 행위를 하였는가를 볼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베트남 여성을 위한 영화라고 주제를 알려준다.
하지만, 내게는 베트남 여성이 겪었던 희생속의 순수함 이전에
한국의 근현대사 몫지 않은 베트남 역사를 타자의 입장이 아니라
그들이 마음으로 온전히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었다는 데 감사함이 더 일어났다.
순백의 옷, 그것은 마치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듯 했다.
옷이 흰색이 아니라, 그 민족의 마음이 하얗고 순수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 아닐까.
한편, 베트남 여인 [단]의 관점이 아니라
버려진 아기, 군수집에서의 노예,
결혼식을 못 올리면 평생 고생의 삶을 살아야하는 사주의 운명.
곱추라는 장애. 어디까지 떨어져야 될지 모르는 [구] 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것도 많으리라.
아무튼 영화 [하얀 아오자이]
3월의 봄비처럼 우리의 마음을 적셔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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