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과 도깨비 이야기는 무더운 여름밤을 보내는데 제격이다.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등줄기가 오싹해지고 간담이 서늘해지니 더위를 물리치는 데 이만한 게 또 있을까. 그런데 좀 아쉽다. 극장과 안방에 귀신은 넘치는데 도깨비는 안 보인다. 그 많던 도깨비들은 어디로 갔나? 말이 나온 김에 우리가 잘 아는 도깨비 이야기부터 하나 해보자.
어느 마을에 마음씨 착한 혹부리 영감이 살았다. 하루는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해가 저물어 근처 빈집에서 묵게 됐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무서움을 달래고 있는데, 도깨비들이 그 노랫소리를 듣고 우르르 나타났다. 그 중 대장 도깨비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영감, 그 아름다운 소리는 어디서 나오지?”
영감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자기 혹을 가리켰다.
“내 노래주머니에서 나오지!”
혹을 노래주머니라고 믿은 도깨비는 바로 금은보화와 혹을 맞바꾸었다.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혹부리 영감에 대한 소문이 이웃마을 욕심쟁이 혹부리 영감 귀에도 들어갔다. 욕심쟁이 영감도 똑 같은 방법으로 도깨비를 만났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금은보화 대신 남의 혹까지 하나 더 붙여서 겨우 살아 돌아왔다.
도깨비의 복수는 공포스럽다기보다 유쾌하다. 바로 이런 친숙한 이미지 때문에 학자들은 “한국의 도깨비는 원한을 품고 사람을 해치는 귀신들과 확연하게 구분이 된다”고 말한다. 신통한 능력을 가진 존재지만 남의 말에 쉽게 속아넘어가기도 하고, 금은보화와 노래를 맞바꿀 만큼 풍류를 즐기며, 착한 사람은 돕고 악한 사람은 골탕을 먹이는 정의감까지 갖추고 있다. 이런 심성 덕분에 일각에서는 도깨비를 ‘가난과 노동에 찌든 옛 여인들의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 ‘매력魅力’이라는 말 속에도 도깨비가 있다(도깨비 매魅). 매력적인 사람이란 바로 도깨비처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람을 뜻한다. 그렇다면 도깨비의 어원은 어떻게 되는가? 조선 초에 나온 <<석보상절>>이라는 책에 '돗가비'라는 이름이 처음 쓰였는데 돗은 '불'이나 '씨앗'의 의미로 풍요를, '아비'는 성인 남자를 상징한다. 고로 도깨비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물과 희망을 주는 존재였다. 이외에도 몇 가지 해석이 더 있다.
잠시 사전적 해석을 내려놓고 도깨비라는 세 음절을 천천히 읊어보자. 우리말 속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어있다. 나는 언어학자는 아니지만 ‘도깨비’라는 말을 할 때마다 ‘도를 깨우친 아비’, ‘도를 깨우치고 널리 알리는 사람’이란 의미로 더 가깝게 와 닿는다.
우리는 ‘틀이 없고 변화무쌍해서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을 이를 때, ‘도깨비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기존의 관념을 깨고 변화를 창조하는 사람, 어둠 속에서도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고 더욱 신나게 즐기는 사람, 한번 불이 붙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력투구하는 사람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도깨비 같은 사람’은 시대와 국적을 초월해 모든 사람들이 동경하고 사랑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그러니 도깨비 같은 사람이라고 하면 최고의 극찬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도깨비의 수많은 특징 중에서도 대표적인 게 ‘잘 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깨비는 놀이의 대가다. 자기하고 잘 놀고, 주변 사람들하고도 잘 논다. 요즘도 도깨비처럼 잘 노는 사람, 잘 놀아주는 사람이 인기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잘 놀 수 있는가?
먼저 무거운 감투부터 내려놔야 한다. 자기라고 알고 있는 자기 몸과 이름, 직책과 명성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또 그동안 이룩한 성공과 실패에도 갇히지 말아야 한다. 그랬을 때 진짜 자기 속에 있는 순수한 영혼의 떨림을 느낄 수 있고, 그 떨림을 통해 무궁무진한 창조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삶이 지루하고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때마다 도깨비들의 신나는 두드림을 상상해보자. 우리의 뇌 속에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가 있다. 방망이에 창조의 뿔이 솟아나도록 끊임없이 두드려보자. 간절히 원하는 것,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뿔은 솟아난다. 도깨비 놀이를 하다보면 진짜 도깨비, 참깨비가 된다. 하지만 방망이가 있어도 두드리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현실로 이뤄지지 않는다.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도깨비도 최소한 목표는 정하고 두드렸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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