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한민국을 뜨겁게 뒤흔들었던 월드컵은 현대국학운동사에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바로 월드컵의 상징 ‘붉은 악마’가 동양의 군신으로 불리우던‘치우천황’이었기 때문이다. 신시배달국 제 14대 환웅인 치우천황은 기존 강단사학계에서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던 터라 그 의미는 더욱 컸다. 국민들은 붉은 악마에 환호했고, 곧이어 많은 네티즌들이 치우천황에 관심을 가졌고 그 관심은 고스란히 역사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민족단체들 사이에서는 2천년간 외면당했던 선조들의 오랜 바램이 월드컵으로 승화한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을 만큼 그 뜨거웠던 여름은 남달랐다.
국학원 개원 준비 중 동북공정 음모 접해
|
 |
|
▲ 국학원은 2003년 12월 23일 중국이 유네스코에 고구려유물을 자국의 문화유산으로 등재해 고구려사를 왜곡하려는 것에 대한 100만 서명운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 자료: 코리아헤럴드 - |
2002년 월드컵 붉은 악마를 통해 분출된 민족의 에너지를 국혼으로 승화시키고자 97년부터 진행되어오던 국학원 설립은 더욱 속도를 내었다. 그런데, 국학원 전당 개원을 준비하던 2003년 말 전혀 뜻밖의 소식이 들렸다.
국학원 홍보차 들린 관공서의 담당자가 “내년 7월 중국 수저우(蘇州)에서 열리는 제2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중국이 자국내 고구려 유적을 중국의 문화유산으로서 등재하고 고구려를 중국 내 지방정권으로 왜곡해 세계에 알리려 한다.”고 한 것이었다. 또한 “이에 앞서 1월에 파리에서 열리는 이코모스(ICOMOS, 유네스코 산하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예비회의를 통과하면 중국의 의도대로 등재되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된다.”라고 했다.
한 달 남짓 남은 기간 동안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중국의 음모를 막을 수 있을 가능성은 없어보였다. 그러나 잃어버린 한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알리기 것을 새로운 삶의 목표로 삼았던 국학강사들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국학강사들 무작정 거리로 나서다
|
 |
|
▲ 한겨울 추위 속에서 동북공정 반대 100만 서명운동를 하고 있는 국학강사들 |
이 소식을 들은 전국의 국학강사들과 국학원청년단 소속 젊은이들은 한겨울 칼바람과 눈이 쏟아지는 거리로 나갔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중국 동북공정의 부당함과 고구려유적의 유네스코 등재음모를 알리고 반대서명운동을 펼쳤다. 시민단체인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국학운동시민연합에서도 연대해 함께 <고구려 역사유물 전국 순회 전시회>를 펼쳤다. 전국 국학강사들이 관공서, 학교, 주민자치센터, 복지관 등에서 단 10분이라고 강의할 기회를 만들어 동북공정을 알렸다.
국학원에서는 동북공정 관련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고 윤내현 단국대 대학원장, 최광식 고려대 박물관장(현 국립중앙박물관장), 윤명철 동국대 교수 등 우리 상고 및 고대사 전문가를 초청해 국민강좌와 학술회의를 통해 심각성을 사회에 알렸다.
이러한 가운데 국학원의 최대 후원기관인 단월드가 대대적인 서명운동에 앞장섰다. 전국 모든 센터에 홍보물이 붙었고, 3천여 공원에서 건강을 전하는 단학강사들도 주민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서명을 받았다. 이미 센터에서의 국학강의와 필수코스로 자리한 민족혼 교육을 받은 회원들이 많아 참여 열기는 뜨거웠다. 그들 중에는 가족, 이웃, 직장에서 수십 명씩 서명을 받아오거나 국학강사들과 함께 거리 서명운동에 열정적으로 동참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초기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그런 일이 있는데 정부나 언론에서 가만있겠나? 사기 아니냐?”“이런 서명 해봐야 아무 소용없어! 중국이 꿈쩍이라도 할 것 같아?”라며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전국 16개 시 도를 중심으로 서명운동과 고구려역사유물 전시회 등을 진행하자 국민의 이목이 조금씩 쏠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대다수의 국민이 ‘동북공정’이란 용어조차 생소하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온라인서 불타오른‘고구려지킴이’네티즌의 폭발적인 호응 인터넷 의병활동, 세계유수 언론사에 중국 동북공정의 부당성 알려
|
 |
|
▲ 당시 고구려지킴이 운동을 이끌었던 100만 서명운동 국학원 홈페이지 |
국학원은 온 오프라인에서 100만 명이 참여하는 서명운동 ‘을지문덕’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우선 국학원 소개페이지와 온라인 서명페이지 단 두개를 급히 만들었다. 12월 14일에는 ‘고구려지킴이’다음카페를 열어 중국 동북공정에 대한 정보와 현재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국학원 사이트에 온라인 서명을 당부했다.
고구려 지키기 움직임의 열기는 온라인에서 매우 뜨거워졌다. 카페 개설 한 달 만에 고구려 지킴이는 5천 명을 넘어 1만 명이 참여했다. 처음에는 10대 청소년들부터 반응이 왔고 이어 30대, 20대 젊은 세대가 폭발적인 호응을 보였다. 네티즌들은 메신저 대화명에 “중국에 맞서 고구려를 지키는 수문장의 창이 되자.”는 뜻으로 삼지창 모양의 그리스 문자인 ‘Ψ ’(프사이)달기가 유행하기도 했다.
네티즌들의 움직임은 놀라웠다. 동북공정에 대한 글을 접한 네티즌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인터넷 카페에 올리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했다. 여러 동호회 카페나 사이트에 직접 가입해서 정보를 보냈고, 이를 접한 카페지기들은 보유하고 있는 회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고구려 지킴이의 취지를 알려 나갔다. 국학원 홈페이지는 네티즌들에 의해 3일 만에 다운되기도 했으며 2주 만에 22만 명이 동북공정 반대 서명에 참여했다. 결국 을지문덕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안 되어 온라인 30만 명을 포함 1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중국동북공정 반대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실로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첫 우호적 기사 실려 국제사회 관심
|
 |
|
▲ 2004년 1월 13일 탑골공원 앞에서 동북공정 반대 100만 명 서명용지를 담은 상자를 앞에 두고 퍼퍼먼스를 연 국학원 청년단. 이날 장영주 국학원 교육원장은 항의서한을 중국대사관에 전달하고 청와대로 향했다. |
국학원은 2004년 1월 탑골공원에서 100만 명 서명용지를 쌓아두고 역사왜곡 규탄 대회를 열었다. 당시 국학원 장영주 교육원장이 중국대사관을 찾았으나 대사관측이 서명용지 수령을 거절해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청와대로 갔다. 당시 정무수석비서관이 나와 장 원장은 고구려유물 등재의 문제와 중국의 동북공정을 설명하고 국민의 뜻을 전했다.
불과 2주만에 100만 서명이라는 이 놀라운 성과는 1주일 후 뜻하지 않는 곳에서 희망의 날개짓을 펼쳤다. 미국의 유력지 '워싱턴포스트(WashingtonPost)'는 2004년 1월 22일 국제면 기사에 바로 1주전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있었던‘고구려 지킴이’100만인 서명운동 및 역사왜곡 규탄대회에 대한 내용을 큼지막하게 실었다. 이 기사는 한국과 중국의 역사논쟁이 한창일 시점에 한국에 우호적인 첫 해외기사였기 때문여서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South Korean outrage has boiled over into a nationwide campaign to protest China's claim. University scholars, historians and civic activists have collected more than 1 million signatures…(한국인들은 중국의 주장에 반대하는 범국민적인 캠페인을 불러일으켰으며… 100만 명이 넘는 서명을 모았다) …(중략)…
'The Spirit of Goguryeo is in the hearts of 80 million Koreans,' read a wide banner hung across a park fence in downtown Seoul last week…(지난주 서울의 도심 공원에 ‘고구려의 혼, 8000만 한민족의 가슴속에 살아 있다’라는 배너가 걸렸다)…“ <2004. 1. 22 워싱턴포스트>
특히 한국외대 여호규 교수의 발언을 인용해 “중국은 (고구려사에 대한) 색다른 주장을 폄으로써 향후 한국과의 영토분쟁에 대한 보험을 들어놓으려 하고 있다.”며 “중국 측이 그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티베트에 대해서도 같은 정책을 펼쳤다.”고 지적했다. 한국과 중국의 역사 논쟁이 한창일 시점에 한국에 우호적인 첫 해외기사였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100만 서명운동으로 국민의 에너지를 모으긴 했으나 유네스코 심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고구려 유물등재 심사가 있는 유네스코 산하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파리 예비회의를 하루 앞둔 2004년 1월 15일 고구려 지킴이의 을지문덕 프로젝트 중 가장 큰 미션이 추진되었다.
|
 |
|
▲ 고구려지킴이 운동에 젊은 청년들의 참여열기는 뜨거웠다 |
국학원은 고구려지킴이 카페에 “고구려는 기원전 37년부터 700여년간 한국의 고대국가였다.”는 제목으로 영문서한을 올렸다. 이에 사이버의병들은 일어, 불어 등으로 번역문을 올렸고 한 대학원생은 이코모스의 집행위원들의 이메일을 확인해 카페에 올렸다. 고구려지킴이를 비롯해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이코모스에 무려 16만 통의 이메일을 보냈다. 또한 세계 주요 언론사에 이번 유네스코 고구려 유물등재에 숨겨진 진실을 알렸다.
드디어 이코모스의 모하드 하만 위원(카메룬)으로부터 호의적인 답신을 받았다. “모르고 있었던 사실을 알고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심사가 있는 오늘 아침 우리(이코모스 위원들)는 보내 온 편지를 검토했다. 내용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더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1월 17일 이코모스는 북한 내의 고구려 유적을 중국 영토에 있는 유적과 함께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하도록 권고키로 결정했다. 북한은 2002년 먼저 유네스코에 고구려 유물 등재를 신청했다 보류된 상태라 가능성이 낮았으나 이번 결정으로 중국 단독 등재를 막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의 입장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
 |
|
탑골공원에서 열린 동북공정 반대집회(왼) 광개토대왕 프로젝트에 참가한 국학원청년단(오) |
국학원은 이에 그치지 않고 미주 단월드와 함께 해외 교포들에게 동북공정을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를 전개했다. 이미 미주 전역에 자리한 120여개의 단센터가 한국 전통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해오고 있어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2004년 2월 5일 국학원청년단은 미국LA총영사관(이윤복 총영사)과 LA한인회를 방문해 동북공정을 알리고 반대 서명운동인 ‘을지문덕 프로젝트’에 미주 한인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또한 2004년 3․1절 85주년을 맞아 기획한 태극기 몹(일시에 한 장소에 모여 태극기를 흔들고 흩어지는 특별작전)에는 전국 12개 지역과 미국, 일본, 영국, 스페인 등 13개국 50여 도시의 해외동포까지 참여해 동시다발적으로 개최되었다.
고구려 유물 유네스코에 북한 중국 공동 등재 최종 결정
결국 2004년 6월 말 중국 수저우(蘇州)에서 열린 제 28차 세계유산위원회(WHC) 총회에서는 북한 및 중국 고구려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목록 공동등재가 최종 결정되었다. 중국 동북공정에 맞서 화려한 불꽃을 태웠던 ‘고구려지킴이’는 2004년 이후 ‘사이버의병’이란 이름으로 개명하여 국경일 태극기 몹, 2006년 다시 불거진 동북공정 반대 서명운동 등 나라지킴이 애국심 실천 운동을 계속 전개했다. 카페도 ‘사이버신시(cafe.daum.net/cybershinsi)’로 이전해 대표적인 역사지킴이 단체로 활동해오고 있다.
하지만 이후 중국의 동북공정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고구려에 그치지 않고 단군조선에 이르는 모든 역사를‘요하문명’이란 이름으로 중국 중심의 역사로 재편하고 있다.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은 내일을 기대하기 힘들다. 없는 것도 있다고 하며 왜곡하며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일본과 중국을 보면, 있는 것도 외면하는 우리들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인류의 보편적 평화철학으로 주목받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을 건국 이념으로 가진 민족, 하늘, 땅, 사람이 하나라는 천지인(天地人) 정신을 바탕으로 반만년을 이어온 한민족 역사의 주인은 바로 누구인가?
[Box] 중국 동북공정의 실체… 21세기 중화시대 개막선언
중국이 추진하는 동북공정은 단순한 고구려사 왜곡만의 문제는 아니다. 중국은 중국의 뿌리라고 하는 시조를 모신 귀근원(歸根苑)내 중화삼조당에 자국의 조상 황제 헌원과 맞서 싸운 동이족의 치우천왕을 오히려 중국 시조로 둔갑시켰다. 또한 만천성국립공원에 ‘한민족의 시조모’가 아닌 ‘중국 소수민족 조선족의 시조모’로 쑥과 마늘을 든 18m의 웅녀상을 세워 놓았다.
고조선부터 고구려, 발해에 걸친 역사를 비롯해 동북아시아의 모든 역사를 중국 중심의 역사로 재편하는 것이었다. 이는 미국과 함께 G2국가로 급부상한 중국이 “21세기 새로운 중화시대를 열겠다.”는 패권주의적 국가 전략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 이미 티베트를 대상으로 서남공정, 신장 위구르 족을 대상으로 서북공정을 진행한 바 있다.
이는 중국 내 잠재적 갈등요인인 소수민족을 통합하고 또 대외적인 문제인 한국과의 영토분쟁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간도협약이 무효인 상태에서 문제되는 동북 3성(길림성, 흑룡강성, 요녕성)의 소유권을 명확히 확보하며 차후 북한정권 붕괴시 한강이북에 대한 연고권을 내세우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눈여겨 볼 것은 동북공정의 핵심에는 중국이 자랑하던 4대문명 발상지라던 황하문명보다 1천년 앞선 홍산 문명이 중국 만리장성 바깥쪽, 그들이 오랑캐의 땅이라고 했던 내몽골 적봉시에서 발견된 데 있다. 바로 한민족의 터전이었던 지역에서 발굴된 적석묘, 신전, 곰숭배 유물 등 우리의 망각 저편에 있던 신시배달국과 단군 조선 초기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발굴된 것이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문명인 홍산 문명을 자국의 것으로 하여 중국을 부상시키려 하고 있다. 그 시작이 고구려사 편입을 위한 유물등재가 있었을 뿐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동북공정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 사대사관, 식민사관에 얽매인 우리 학자들의 논문들이라는 점이다. 망각에 묻혀 웅혼한 역사를 처참하리만치 외면했던 무관심의 허를 뚫고 중국이 역사를 찬탈하려는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