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대평가된 [프로도]
겁많고, 난쟁이처럼 키도 작은 호빗족의 [프로도] 는 절대반지를 없애는 막중한 책임을 떠안게 된다. 그는 나약하고 [골룸]의 속임수에 친구 [샘]을 버리기까지 할 만큼 현명하지도 못하다. 전쟁을 통해 영웅이 탄생하는데, 그는 전투에 참여하지도 못한다(배제된다). 절대 반지의 운반자로 그의 순진무구한 눈망울과 욕심이 없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겠지만, 결론에 가서도 그는 반지를 파괴하지 못한다.
*서양의 중세사-거대담론의 남성적 영웅주의
영화의 주인공은 결코 [프로도]가 아니다. 그는 반지 운반자에 불과하다. 진정 이 영화의 핵심 주체들은 당연히 각 종족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이다. 인간으로서 왕좌에 오르는 [아라곤]과 엘프족의 왕자인 [레골라스] 그리고 난쟁이지만, 우직함으로 밀어붙이는 [김리]가 있다. 마치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활약했던 [삼국지]-유비와 관우 그리고 장비의 삼총사를 떠오르게 한다. 전쟁은 영웅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수도 없이 많은 익명의 죽음을 담보로 명분은 깃발을 꽂는다.
애초에 [프로도]는 빛과 어둠이라는 거대담론의 세력 다툼속에 배제된 존재다. 호빗족의 네 명은 어디가나 전쟁이란 서사구도에서 나서는 안 될 존재로 인식된다. [메리]와 [피핀]역시 중요한 순간에 일을 망치거나 거대담론의 영웅들에게 적잖은 곤혹으로서 길을 잃게 만들기도 하지만, 재치를 발휘해서 위기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세오덴 왕]은 공주이지만, 여성에 불과한 [에오윈]과 난쟁이에 지나지 않는 호빗족의 전쟁가담을 무시한다. [에오윈]이 [메리]를 전사로서 인정해 말에 태우지만, 그 둘은 다른 영웅들처럼 스스로 힘을 발휘할 수 없고, 어디까지나 같이 붙어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야 되는 의존적 존재에 불과하다.
영화에서 눈을 뗄 수 없을 장대한 스케일의 전쟁씬이 나온다. [두개의 탑]을 훨씬 능가하는 [왕의 귀환]편에 절대절명의 전쟁씬은 많은 담론을 담고 있다. 우선, 반지 원정대에서 [사우론]의 부활과 함께 동지를 배신한 [사루만]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생명의 모태가 되는 나무를 없애고, 지하의 공장을 통해 깊이 파묻혀있던 어둠의 세력들을 하나 둘 꺼내기 시작한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그들이 세계대전을 준비하기 위해 군수산업을 연상시키듯 인간처럼 각종 철제 무기와 갑옷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다. 20세기 양차 대전을 통해 드러난 인간의 야만성을 괴수화시키기 위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환타지 장르라는 포장지를 하나 둘 뜯어보면 서양적 이데올로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서양의 인종주의 그리고 오리엔탈리즘
[펠렌노르 평원 전투]에서 수적 우위에 있던 괴물들이 세오덴왕을 중심으로 한 기마병의 속도전 앞에 위기를 맞을때 등장하는 [코끼리 군단]이다. 내가 보기에는 맘모스정도는 될 만큼 엄청난 크기의 코끼리 발바닥에 기마병들이 밟히고 휘젓는 상아에 부딪혀 날라가고 만다. 그런데, 코끼리는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동물이다. 그 위에 아프리카 원주민이 타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아닌게 아니라 중동인(낙타는 왜 안 나오는가)까지 어둠의 세력을 위해 싸운다. [사루만]의 회유와 위협에 타협하고 앞장이 노릇을 하는 아프리카 흑인들과 중동인(동양인은 서양의 오리엔탈리즘도 있겠지만, 헐리우드 영화에 잘 나오지 않는다. 일찌감치 배제된다는 사실이다.)과 빛의 세력으로서 서양 기마병간의 전쟁 장면역시 중세 시대의 서양사를 그대로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양의 자연관-미야자키 하야오와 비교하며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봤을때 [반지의 제왕-두개의 탑]에서 잠시 나오는 숲의 신 [나무수염]은 친구로서 배신한 [사루만]의 감정도 있겠지만,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위기에서의 항전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대지의 분노를 표출했던 [오무]와 [모노노케 히메]에서 기어코 머리가 잘린 [사슴신]의 분노를 통해 자연의 경이로움과 분노를 잘 나타낸 것에 비해, [나무수염]은 그렇게 큰 역할을 담당하지 못한다. 빛의 세력과 어둠의 세력들이 숨을 쉬고 발을 내딛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제공하는 자연의 힘은 이미 인간이 주체이고 자연은 대상에 불과하게 봤던 데카르트 이후 고정불변처럼 여겨지는 진리 앞에 별 의미가 없다.
*절대계의 희생양-골룸
곱추처럼 굽은 허리와 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스투어 종족의 [골룸]의 존재는 영화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왕의 귀환] 첫 장면에서 친구를 죽임으로써 반지를 손에 얻지만, 결국 잃게 되고 이러한 상실은 정신분열을 가져온다. [프로도]처럼 나약하지만 안내자로 도와주는 퍼소나persona와 물고기를 생채로 씹어먹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야만성과 잔인함으로 반지를 뺏는 퍼소나persona를 양 축으로 평행을 찾다가 언제든 기울어지고 마는 [골룸]은 절대계와 상대계의 위험한 외줄타기와 같다. 반지를 얻고났을때의 절대계의 야욕과 지배욕은 반지를 잃고나서 상대계로의 자리바꿈이 쉽지 않음에 따라, 그 두 축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신분열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물론 [골룸]을 성격의 이중성 혹은 선과 악의 이중성으로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지는 프로도가 없앤 것이 아니다. 골룸이 없앤 것이라는 점이다. 절대계와 상대계의 위험한 외줄타기로 정신분열을 겪고 있던 골룸은 반지를 얻음과 동시에 다시 원래의 안정을 얻지만, 이것이 곧 죽음을 의미하기에 그의 희생양으로서의 역할이 마무리된 것이다.
*환타지 문학의 가능요인-서양의 마법사
환타지 문학에서 마법사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이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마법사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존재다. 그리고 다양한 종족과 괴물들도 통솔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의 반지 원정대의 실질적인 리더로서 자리매김된다. [반지 원정대]에서 [간달프]는 지하협곡에서 [발로그]와 싸우면서 회색이 아닌 눈부신 백색의 마법사로 돌아와 [두개의 탑]과 [왕의 귀환]에서 전천후의 역할을 담당한다. [두개의 탑]에서 [세오덴 왕]이 [사루만]의 교활한 추종자 [웜통]에 의해 정신을 뺏긴 상태를 [간달프]의 능력으로 돌려놓은 장면은 지금의 무당처럼 샤머니즘적이다.
*서양의 이원성-절대계의 부활
텍스트가 아무리 환타지라는 장르에 포섭된다고 하더라도, 현실의 감독으로부터 도출되는 다양한 캐릭터간의 관계 그리고 전체 내러티브의 매개 등에서는 많은 결이 발견된다. 그 첫번째가 선과 악이라는(물론 여기서는 빛의 세력과 어둠의 세력이라는 극과 극의 색으로 대립되지만) 이중적 대립구도가 반지의 제왕인 [사우론]의 부활과 함께 [프로도]의 반지를 없애기 위한 여정으로 시작된다는데 있다. 쉽게 말하자면, 반지는 우리가 손가락에 끼고 싶은 소유물로서 전세계를 통치하고자 하는 야욕으로 확장되지만, 곧 상대계의 죽음을 담보하는 것만이 절대계의 위치를 고수하게 된다는 점이다. 서양의 이원론은 기독교의 [선악과]라는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데카르트의 [근대적 주체성]이 대상화되는 시선을 통해 물질 문명의 성장과 함께 세계대전으로 확대된다. 피터 잭슨 감독의 [반지의 제왕]에서도 앞에 붙는 [절대]라는 명칭 자체로서의 잠들어 있던 반지는 우연을 가장한 누군가의 건져냄은 곧 상대계에서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던 많은 종족들이나 깊은 어둠속에 잠들어 있던 괴물들까지 어떻게 하든지 규합될 수 있는 기제로 작동한다. [반지]는 인류가 전세계적으로 공포와 죽음으로 상처를 입게 한 [핵]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 [핵]이 나오므로서 곧 전세계적인 전쟁으로 많은 인명살상이 이루어졌음을 말할게다. 하지만, [반지]는 [사우론의 눈]처럼 창조되어서는 안 되는 저주의 산물임을, 그 동안 수도 없이 스스로 선하다고 믿는 이들의 의식적 봉합으로 잠들어 있던 [악마]를 인간의 무의식적인 실수로 부활된다는데 있다. 상대계는 절대계의 부활과 잉여존재로서의 삭제만이 안정과 평화가 도모된다는 서양의 평화관임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최후의 죽음은 결코 완전 증발이 아닌 "I'll be back" 이란 대사처럼 시리즈물로 인간의 나약함과 불안을 기저로 끊임없이 양상된다고 파악된다. 스크린의 60~70% 을 독점하고 홍보되어 박스오피스를 거머쥐는 헐리우드의 눈은 곧 자본의 힘으로 나타나 상대계의 다양한 문화와 역사는 어김없이 블랙홀처럼 흡수될 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혼자만의 망상은 아닐 것이다.
[프로도]를 친구일 뿐만이 아니라 주인으로까지 모시는 [샘]의 역할은 반지 원정대를 시작으로 왕의 귀환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굳이 이 영화의 휴머니티를 찾고 싶다면 거대 담론의 남성적 영웅주의에서 벗어나(그렇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기에) 절대 사명을 짊어진 [프로도]를 공심으로 도와주는 [샘]의 우정과 헌신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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