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놀이는 재미있고 시끄럽다. 왁자지껄이라고나 할까? 아니 왁자지껄이라는 말로도 그 흥나는 정경을 표현할 수가 없다.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이다. 그 절정에는 시끄럽다는 지하철의 소음 70db을 삼켜버릴 정도이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덩실덩실 춤까지 추어지는 놀이이다. 하지만 희한한 것은 이 시끄러운 윷놀이판은 누구라도 그 열광과 흥분 속으로 동화시켜버린다는 것이다. 아무리 점잖은 사람이라도 지나가는 나그네라도 윷놀이를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건 금방 그 속으로 몰입되어 ‘하나(oneness)’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윷을 연구하면서 점점 윷놀이의 매력에 빠져든 후로부터 필자는 정초가 되면 귀향을 하고 친척집을 방문할 때 윷놀이 일습을 준비해간다. 그래서 저녁상을 물릴 즈음이면 슬그머니 윷을 꺼내든다.
“윷놀이나 한판 하시지요.”
별로 내키지 않는 형수며 조카의 손을 끌어당기며 시작한 윷놀이는 금방 온 집안을 떠들썩한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버린다. 집중력 협동심 손재간 기억력 두뇌싸움 심지어 말싸움(?)에 이르기까지 윷놀이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를 한 덩어리로 만들어버리는 묘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앞글에서도 말했듯이 말판을 걷어차 버리고 놀잇꾼 전원이 머릿속으로만 말을 노는 ‘건궁윷놀이’는 흥분의 절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브레인 스크린(brain screen) 기술까지 습득하게 한다.
그렇게 한 시간여 제대로 윷놀이 한판을 끝내고 나면 얼굴에 땀방울까지 맺혀서, 소한 대한의 한참 추울 때이건만 창문을 활짝 열고 찬바람을 쏘여야할 정도이다. 한겨울 추위 따위는 느낄 겨를이 없을뿐더러, 아마 겨울스포츠로서도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이만큼 훌륭한 기능을 가진 것도 드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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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초에 으레 펼쳐드는 어른들의 놀이로는 화투가 있다. 도박으로 치우치지만 않는다면 화투도 참 간편한 놀이이긴 하다. 그러나 으레 ‘너희들은 이런 것 하지 말아라’하면서 아이들을 건넌방으로 내쫓고는, 몇몇 어른들끼리만 돈을 걸고 내기를 즐긴다. 이렇게 국적도 불분명할 뿐 아니라 비교육적이며 자기 모순투성이인 화투보다는 온 집안사람을 덩실덩실 춤추게 하는 윷놀이가 아마 백배 천배 건전하면서도 흥겨울 것이다. 전 세계에 이렇게 재미있으며 유익한 놀이가 또 있을까?
그런데 희한한 것은 이 윷놀이는 정월에만 논다는 사실이다. 물론 사시사철 동서남북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놀 수야 있지만, 우리의 오랜 민속으로는 정월 설날에서 대보름까지를 윷을 논다. 이 보름동안은 고대로부터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 민족의 축제기간이다. 보름씩이나 노는 것이 너무 길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이때는 농한기이자 가장 추운 시기이니, 농경사회에서 다른 일을 하기도 어렵다. 윷놀이는 바로 이 지난 한 해 지친 심신을 달래며 새해를 설계하는 축제기간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축제는 인류가 집단을 이루고 모여 살면서 하나의 공동체 의식으로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축제를 통해서 천상의 신(神)과 교감하므로써 엑스터시를 경험한다. (마약류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엑스타시(ecstasy)란 황홀경 희열의 상태의 뜻으로서, 원래 종교적인 신비체험의 절정을 가리킨다. 그리스어 ek, exo(~의 밖으로)와 histanai(놓다, 서다)의 복합어인 ekstasis에서 유래하며, '밖에 서다'라는 뜻으로 원래는 영혼이 육체를 떠나 있는 상태를 뜻했는데, 후에 인간이 신과 같은 초월적 세계나 존재와의 합일을 통한 신비체험의 의미로 정착되었다. 원시 샤머니즘을 비롯해서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 성행하였던 종교집단은 비의(祕儀)를 통해서 엑스터시를 추구했다. 일정한 동작의 반복, 주문, 춤, 노래, 음악, 고행, 그리고 약물복용 등은 엑스터시에 이르기 위해서 자주 사용되던 방법들이다. 현대에서도 이스라엘의 종교에서 보이는 신에 사로잡히는 상태, 요한 묵시록에 나타난 새 하늘과 새 땅의 환상, 자기의 소멸을 통해서 유일하고도 진정한 존재인 신과의 합일을 추구한 이슬람의 수피즘 전통, 나아가 선(禪)이나 요가의 신비경험 등도 엑스터시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거의 쓰이지 않는 고대 희랍의 개념이지만, 엑스터시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instasis가 있다. 이는 인간 자신의 내면에 침잠해 들어가 자아와의 합일을 이루는 경지를 말한다. 그럼 윷놀이는 엑스터시인 인스터시인가? 필자는 윷놀이에서 느껴지는 황홀경은 인스터시에 가깝지만 양자의 종합판이요, 니르바나의 작은 구현이라고 본다.
아무튼 엑스터시를 통한 신비경험은 신이나 최고 존재를 직접 경험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하게 된다. 더구나 엑스터시는 오랜 기간에 걸친 지식의 습득이나 수련이 없어도 경험 가능하기 때문에 민중들에게 쉽게 퍼지기도 한다. 이로 인해서 자칫 종교 내에서 이단시비 문제로 등장하거나 사회적 이탈현상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불행한 일이지만 오늘날 대표적인 마약류의 이름으로 쓰이는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그나마 종교전통에서는 신을 경험하기 위한 방편이었지만, 지금은 목적은 상실한 채 일시적 쾌락에만 빠져있는 꼴이니 이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필자는 그들에게 바보처럼 약물에 빠지지 말고, 윷놀이로 참된 엑스터시를 맛볼 것과 그 강렬한 건강성을 경험할 것을 명령(?)하고 싶다. 아마도 윷놀이에는 불건강한 심신의 치료효과와 브레인 스크린 등의 학습효과 인성 교육 효과 등이 속속 증명될 것을 확신한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윷놀이는 민속놀이의 형식으로 전해져 왔으나, 실은 축제(carnival)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예로부터 음주와 가무를 즐겼다는 우리 민족은 춤과 노래, 농악, 씨름 등의 정초의 축제를 벌였다. 그 흥겨운 놀이판의 중심에 윷놀이가 있었다. 윷놀이판의 그 신명나는 엑스터시를 함께 즐기면서 민중들은 한 해 동안의 농사로부터 오는 노고를 치하하고 새로운 풍년을 기약하며 공동체의 결속력을 다졌던 것이다. 이로써 삶의 스트레스와 고단한 일상을 벗어던지는 카타르시스를 맛보고, 서로가 함께 어우러짐으로써 모두가 하나임(oneness)을 확인하고 희망찬 내일을 기약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왁자지껄한 엑스터시의 하나됨, 중국철학에서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이니 순수무잡(純粹無雜)이니 말로는 떠들지만, 그 절정의 경지를 이렇게 구현하는 이것이 우리 윷놀이 축제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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