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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호기심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세상이다 2012. 2. 23. 14:17
   

사람은 누구나 공통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 하나가 건강 문제입니다. 우리가 끌고 다니는 그 몸이 항상 우리를 위협하고 협박합니다. 아프다고 위협하고,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협박합니다. 끊임없이 몸에 시달립니다. 또 하나는 정신적인 문제입니다. 몸은 건강하지만 직장문제. 가정문제, 환경문제 등 주위 환경으로부터 오는 정신적 불안에 시달립니다. 세 번째는 영적인 불안감입니다. 건강한 사람이든, 부를 쌓은 사람이든, 명예를 얻은 사람이나 권력을 쥔 사람이든, 누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 것인가 하는 삶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에 대한 영적인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이 문제들은 근본적으로는 한 가지입니다. 이 세 가지가 완전히 다 이루어진 사람,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만족한 사람, 완전한 평화를 얻은 사람, 이러한 사람이 정상인입니다. 도통자, 견성자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참으로 정상인인 것입니다.


단학(丹學)은 축지법이라든가 이상한 신통술을 가르치고, 둔갑술을 익히고 쓰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상상과 꿈은 이미 과학이 다 이루어 놓았습니다. 아무리 단학을 해도 삽질을 해야 될 때가 있고, 갈퀴질을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과학으로 해결할 문제는 과학에 맡기는 것입니다. 목적이 분명하면 그 목적을 위해서 갈퀴를 쓸 것이냐, 망치를 쓸 것이냐? 아니면 과학을 활용할 것이냐? 선택에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호기심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목적의식이 뚜렷해야 합니다. 비행기나 자동차를 두고 축지법을 써 보겠다는 것은 망상입니다. 또 산에서 도통공부를 하다 잘못 허깨비에 씌운 것을 도통한 것으로 착각하여, 주문을 외면 문장대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죽지 않을 것이라고 뛰어내리다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의 몸뚱이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안 죽는 것이 더 이상한 것입니다. 그것이 도(道)입니다. 높은 데서 떨어지면 죽는 것이 도이고, 불 속에 들어가면 타는 것이 도입니다. 불 속에 들어가도 타지 않으면 그것은 도가 아닙니다. 법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할 것은 법이지 이상야릇한 술법이 아닙니다. 이 법은 자연의 법칙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연법(自然法)이요, 천법(天法)이요, 진리(眞理)입니다. 자연의 법칙. 법이 통하는 세상, 법이 존중되는 세상입니다. 법에 의지하고 살 때 사람은 평화를 얻습니다.


법을 알 때, 또 법을 아는 눈과 귀가 열렸을 때, 그 사람은 중심을 잡게 됩니다. 단학을 하면 기혈순환이 잘 되고 정신통일이 되기 때문에 몸이 건강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수승화강(水乘火降)의 원리에 의한 것입니다. 그것이 법입니다. 법이 아닌 것에 의지한다면 그것은 술법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완전한 인간은 자기의 실체를 아는 사람입니다. 실체는 법을 아는 것입니다. 법은 이상한 데서 구해지지 않습니다. 정상인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과 동물을 보면, 우리가 좋은 음식, 깨끗한 옷, 깨끗한 집에서 살고 싶어 하듯이 개나 돼지도 깨끗한 곳에 누우려 합니다. 목욕을 시켜주면 돼지도 아주 시원해 하고 좋아합니다. 돼지라고 지저분한 줄 알지만, 돼지에게 자꾸 똥칠을 하면 돼지도 싫어합니다. 사람이 좋은 음식을 먹으려 하듯이 개나 돼지도 똑같습니다. 그것이 본능입니다. 그런 본능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똑같이 충족되기를 원합니다.

 

명예에 대한 본능도 같습니다. 사자나 늑대같이 무리 지어 집단생활을 하는 맹수들은 그 무리의 리더가 있습니다. 리더가 되기 위한 경쟁은 치열합니다.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또 새 리더가 되고자 하는 지원자는 그 집단의 리더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러다 지면 그대로 복종하고 일년 동안 힘을 기른 후 다시 도전합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도 일인자가 되기 위해 싸웁니다. 치열한 경쟁을 벌입니다.


욕망이 충족되면 만족하고 기뻐하는 것은 동물도 똑같습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동물에게 없는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기억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동물에게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물의 기억력은 단순합니다. 본능적인 것에 그칩니다.

 

인간의 기억력은 문화를 일으키고 풍습을 만듭니다. 그리고 질서의식이 있습니다. 질서의식은 사람을 사람답게 합니다. 사회와 가정의 기틀이 됩니다. 또 인간에는 창의력이 있습니다. 기억력을 바탕으로 해서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창조해 냅니다. 창의력과 상상력은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은 정상인이 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하늘은 동물들에게는 없는 질서의식, 기억력, 창의력, 상상력, 판단력과 함께 인간으로서의 책임감과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주었습니다. 그 책임을 완수하고 행복을 느끼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정상인입니다.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해서는 동물에게는 없는 능력을 활용, 발휘해 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창조하고, 발전시킬 책임이 있습니다. 누구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동물은 발전이 되지 않습니다. 할 수가 없습니다. 창의력을 발휘 못하고, 자기 발전을 못하는 사람은 정상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창의력이 자신만을 위한, 욕망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창의력이 아닙니다. 진정한 창의력은 이웃을 유익하게 하고, 전체를 유익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창의력은 계속 발전되고 발전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합니다. 발전하고, 또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기쁨과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개나 돼지로서는 맛볼 수 없는 것입니다.

 

창의력의 목적은 평화와 화합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창의력이 아닙니다. 평화와 화합을 위한 창의력이 되어야 됩니다. 남을 괴롭히기 위해서, 남에게 고통을 주기 위한 창의력은 진정한 창의력이 아닙니다. 인간은 누구나 창의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쓰고 갔느냐? 전혀 쓰지 않았느냐?


그러한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개나 돼지가 쓰는 정도의 수준으로만 활용하고 갔다면 그 사람은 하늘과 땅이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스승이 제자를 이만큼 가르쳤는데, 가르칠 때는 그것을 쓰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자동차를 줬을 때는 타고 다니라고 주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밀고 다니라고 주는 것은 아닙니다.

단학은 여러분이 인간으로서의 사명과 목적을, 개나 돼지가 느끼는 행복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행복과 기쁨을 느끼게 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공부입니다. 삶의 목적을 알려고 하고, 바르게 살려고 하고, 정상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정상인이 무엇인가? 그리고 어떤 사람을 모델로 해야 되겠는가? 최초의 정상인은 ‘단군 할아버지’입니다. 그 다음 정상인이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 소크라테스의 4대 성인입니다. 4대 성인 외에도 많은 정신적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인류의 평화와 화합을 위해 창의력을 발휘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누렸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특별하게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특별하게 태어난 듯이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짓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대 성인도, 단군 할아버지도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고 똑같은 인간이었습니다.


그분들이 천지조화를 부리고, 도가에서 얘기하듯이 천문지리에 상통하달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부처님도 독버섯 꽃으로 죽었고, 예수님도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창에 찔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았다면, 나는 그러한 예수님은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인으로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창에 찔려도 죽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니 이야기할 가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창에 찔리면 피를 흘리며 죽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몸이면서 진리를 위해 죽었기 때문에 모두가 존경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여 보통 사람과 다른 특별한 사람으로 본다면, 우리가 그분을 본받고 존경할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면서 인류의 평화와 화합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존경하고 받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나, 공자님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분들을 성인이다, 성스러운 사람이다 하여 사람 인(人)자를 붙인 것입니다. 사람으로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입니다. 성인이라는 것입니다.

 

성인과 평범한 사람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평범한 사람이란 비정상인을 말합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써서 창의력을 살리고, 자기를 발전시키는 사람, 평화와 화합을 위해 창의력을 발휘하는 사람, 그리고 우주와 내가 하나인 것을 아는 사람, 그것이 정상인이고 천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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