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P/홍익교육

당신은 고통을 느낍니까?

하늘세상이다 2012. 6. 27. 13:32

최근 학교폭력, 가정폭력, 술폭력 등이 넘쳐납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도 모자라는 짧은 인생인데
왜들 이렇게 서로 멱살잡고 주먹질하는 것일까요?

 

제 아무리 대통령, 장관, 경찰이 나서도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1995년 영화 <파우더>를 보신 분이 계십니까?

 

저는 그 영화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면서
참 눈물이 앞을 가리고 가슴이 먹먹해서 차마 다 볼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백색피부로 태어난 제레미 리드.
그의 탄생을 처음으로 본 아버지가 부정합니다.

 

“나의 아들이 아니라고”

 

이 말은 그가 들은 최초의 말이자 상처가 됩니다.

이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자라다가 어느날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죠.

 

그는 일반인과 다른 피부색을 가집니다.

 

인간은 참 유별나게도 다르다는 것을 차이로 인정하지 않고
차별하고 폭력을 가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순수한 마음을 가졌고
세상 만물과도 두루 소통하죠.

 

단지 아버지(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고
언제나 차가운 시선들이 쇠창살처럼 그를 가둘 뿐이죠.

 

영화에서 재미로 사슴을 죽인 경찰관이 나옵니다.
이를 멀리서 지켜본 제리미는 눈물을 흘립니다.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미로 죽인 기쁨에 도취된
경찰관의 손목을 잡고 사슴의 고통을 전해줍니다.

 

경찰관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동물의 고통을 처절하게 느낍니다.
이후로 다시는 총을 잡지 못합니다.

 

학교에서 제레미를 놀리고 폭력을 가하는 급우에게도
너의 폭력이 바로 12살 때 계부에게 맞은 것에서 비롯된 것을
알려줍니다.

 

▲영화의 한 장면, 제레미의 말 "넌 멍이 너무 들어서 체육시간에도 못나갔어"

 

저도 10살 때 기억납니다.

 

친척사이였는데, 형이 동생을 코피 터지도록 때리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눈물을 펑펑 울렸습니다.

 

내가 맞는 것도 아닌데, 그 고통이 가슴을 저며오더군요.

 

학교폭력 가해자의 뇌를 FMRI(자기공명영상)로 촬영해보면
상대방의 고통에 대해 잘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학교에서 국영수 지식만 가르쳤을 뿐
나와 같은 인간의 고통에 대해 마음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고
어떻게 느끼는지 교류하는 방법도 전혀 모르니깐요.

 

집에서 폭력이 많아질수록
그러한 아이들이 학교로 들어가면 폭력은 더욱 커집니다.
다시 사회로 나갈 때, 지하철을 불태워서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가게 하거나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세상은 끊임없이 너와 나는 다르다라는 분리의식을

너보다 내가 낫다라는 경쟁의식만 심어줍니다.

그러면서 빌딩처럼 높아지는 물질문명에 비해 인간의 정신은 너무나 낮아지고 있습니다.

 

올해 대통령이 누가 되든 선거에 참여하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부터 나로부터 운동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신성을 밝히는 길(한문화, 1997)”을 보면 자세히 나와있죠.

 

상대방을 비판하기전에 세상이 바뀌기를 기대하기전에
나부터 깨어나면 됩니다.

 

내가 웃고 행복하면 상대방도 행복해집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함부로 돌을 던지면 속이 후련한 것이 아니라
가슴이 아파야 정상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은 두뇌용량이 아니라
같은 동족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가슴Heart(魂)'를 가졌다는 데 있습니다.

 

지금 자리에 앉아있다면 허리를 펴고 두 손바닥을 빠르게 비벼봅니다.
박수를 10번 쳐도 좋습니다. 뜨거워진 손바닥을 천천히 떼어내

5cm 10cm 정도 간격을 두고 가까이 갔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합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있는 찌릿하면서도 열감이 느껴집니다.
이것이 바로 제레미가 상대방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던 ‘에너지energy’라고 합니다.

 

그는 번개와 함께 태어나 번개와 함께 떠납니다.

 

이러한 에너지 수련을 받은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감정조절도 잘하고 폭력도 높지 않다고 합니다.

 

당연하죠.

 

아이들은 금방 압니다.
자기가 욕을 하기전에 주먹이 나가기전에
그 감정을 다스리는 힘이 자기도 모르게 생긴 것을.

 

누군가 싸우고 있으면
방관하지 않고 서로 말립니다.

 

폭력의 에너지를 그대로 두면 본인도 힘들다는 것을 잘 아니깐요.

 

자기 감정을 다스리고 상대방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국어, 영어, 수학 100점 맞는다고 생기지가 않습니다.

 

머리만 비대해지고
가슴은 서로 죽이는 교육을
지금 우리 어른들이 하고 있습니다.

 

영화 <파우더>는
17년이 지나도 여전히 강력한 메시지를 줍니다.

 

당신과 나는 전기(에너지)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겉모습이 백색이든 혼혈이든 무엇이든
그 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은 다르지 않으니깐요.

 

최근에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어떤 사람과 몇 번 만났는데
상처를 주더군요.

 

“살다보니 별 쓰레기 같은 사람 다 만나보네”


라며 무시하거나 아니면 달려가서 면상에 주먹이라도 갈기고 싶습니다.

그러한 마음이 인상이 좋은 사람이든 험상 궂은 사람이든
다 있습니다.

 

하지만, 파우더를 다시 보면서
한순간에 분노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다시 고요한 평정이 찾아오더군요.

 

바보처럼 또 눈물 흘리고
휴지로 닦으면서 말입니다.

 

그 사람은 어린시절에 또 어떤 폭력을 받았을지
그로부터 또 어떤 상처로 대인관계로 힘들어했을지 느껴집니다.

 

마음의 운동장을 더 넗혀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 때문에 내가 가야될 길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툭툭 털어내고 가고자 합니다.

 

내일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꽃을 한 개라도 더 만나는 이에게 주고 싶습니다.

 

당신은 이 지구별에 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당신의 꿈은 가치가 있고 꼭 이루어질 것이라고 응원할 것입니다.

 

피는 꽃마다 다 아름답습니다!(‘일지희망편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