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존재를 묻다…‘샬림’의 맨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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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규 감독이 12년간의 제작 끝에 개봉한 다큐 ‘오래된 인력거' 출연 배우들. '샬림(네번째)'과 '마노즈(세번째)'(제공=키노아이디엠씨) |
1924년 조선의 인력거꾼 김첨지는 아픈 아내와 세살짜리 아이를 위해 사람들을 태우고 거리를 누빈다. 그가 손님을 많이 태우든 그렇지 않든 그의 인력거에는 항상 가족이 타고 있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좋은 날>에 나오는 김첨지가 2011년 인도의 인력거꾼으로 부활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성규 감독이 1999년 인도에서 처음 만난 인력거꾼 '샬림', 무려 12년 동안 그의 삶을 따라가며 가족을 짊어진 아버지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카메라는 관광객의 눈이 아닌, 기쁨의 도시라 불리는 인도 최대의 도시 캘커타에 ‘샬림’과 같은 4백만 명의 극빈자 삶으로 들어간다.
지난 17일, 서울 종로 미로스페이스 영화관에서 열린 ‘씨네뮤직토크’를 통해 이성규 감독이 전한 ‘오래된 인력거’ 제작기를 들어봤다.
12년 동안 인력거꾼 ‘샬림’을 따라나선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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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픈 아내의 병원비 때문에 갈등하는 '샬림' |
지열 70도의 뜨거운 거리를 맨발로 뛰어가는 ‘샬림’, 그는 아픈 아내의 병원비와 자식들의 생계를 위해 폭우가 쏟아져도 쉼 없이 일한다.
길거리 처마 밑에서 새우잠을 자고, 불친절한 손님과 다투는 일이 많아도 그는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삼륜차’를 사고 가족이 모두 함께 살 날을 기도한다.
샬림은 “까비 쿠쉬 까비 검 예도 진드기해-가끔은 행복하고 가끔은 슬픈 것, 그게 바로 인생이잖아요.”라며 웃음을 보인다. 이슬람교도인 그는 자신이 처한 모든 것은 신의 뜻이라는 ‘인샬라’라며 되새긴다.
지난 12년 동안 ‘샬림’을 따라나선 이유에 대해 이성규 감독은, “‘샬림’에게서 한평생 가난한 노동자로서 자식에 대한 꿈을 안고 살다 세상을 떠난 나의 아버지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샬림’은 이 감독의 아버지이고 보리고개 시대를 넘기 위해 살았던 한국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안타까운 청년 인력거, 그가 떠나보낸 아버지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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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시절 아버지를 잃은 상처로 마음을 닫은 '마노즈' |
‘샬림’과 마찬가지로 인력거 시장에 들어선 ‘마노즈’는 말도 없고 표정도 없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을 영원히 지켜줄 것이라 믿었던 아버지가 지주들에게 무참히 살해된 것을 보게 된다.
이성규 감독은 카스트 전쟁을 촬영했던 10년 전 자료를 뒤져 ‘어린 마노즈’의 모습을 찾았고 스크린에 비춰 관객의 눈시울을 붉혔다.
아버지를 천도(遷度)하고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는 마노즈.
그는 아버지를 좋은 곳으로 떠나 보낸 만큼 자신의 상처(트라우마: Trauma)도 떠나 보낼 수 있었을까?
이성규 감독은 “‘마노즈’를 통해 (민주화운동과 같은) 시대의 문제에 맞서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방황만 했던 80년대 젊은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라고 말했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사람은 없다…비극만 존재할 뿐
‘샬림’과 ‘마노즈’라는 두 인물의 가족사는 한편의 인생극장처럼 잔잔한 감동을 준다. 그러나, 관객의 ‘감동’은 사실 인력거꾼의 고단한 ‘삶’을 위로할 수는 있어도 해결은 되지 못한다.
‘샬림’은 희망을 이루기 위해 남보다 더 열심히 일하지만, 아픈 아내의 병원비와 16살에 가출한 큰아들이 봉제공장에서 일하다가 신종플루에 걸린 현실의 벽 앞에서 더욱 절망으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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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7일, 서울 종로 미로스페이스 영화관에서 열린 ‘씨네뮤직토크’. 뮤지션 황보령(왼쪽), 인도 조감독 아쉬쉬 디베딕(오른쪽)과 함께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 이성규 감독(가운데). |
이성규 감독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사람들, 걸인의 눈동자에도 보석이 있다.’ 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이 말이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난은 분명 불행한 것이고, 가난은 분명 불편한 것이고 가난은 분명 사람으로 하여금 비극으로 몰아갑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감독은, “저는 가난하지만 행복하다는 그런 설문조사는 어디에서 나왔느냐고 되묻고 싶습니다. 일부 서구인들이 만든 판타지에 우리도 똑같이 놀아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가난하지만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인도를 박제화시켰고 그들을 제품화시키려는 어떤 문화적 허영주의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사실 그가 12년 동안 제작한 ‘오래된 인력거’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모든 인도인을 도울 수는 없지만, 캘커타에 제가 알고 있는 인력거꾼들과
아직도 카스트 전쟁을 겪는 바하르 지역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운동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아시안이 함께 하는 NGO를 만들고 싶다는 그의 소망이 관객들과 함께 시작되기 때문이다.
작품의 내레이션은 소설가 이외수가 맡았고, 지난해 국내 다큐멘터리로는 최초로 암스테르담다큐멘터리영화제(IDFA) 장편부문에 진출했다.
샬림, 마노즈 출연|이성규 감독|오래된 인력거| 85분| 2011년 12월 1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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