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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수출되는 ‘역사드라마’ , 한류인가? 역사왜곡인가?

하늘세상이다 2011. 6. 27. 11:03

세계로 수출되는 ‘역사드라마’ , 한류인가? 역사왜곡인가?
주몽, 대장금, 광개토태왕 등 사극이 국민의 역사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논하다
2011년 06월 25일 (토) 18:19:52 윤관동 기자 kaebin@kookhaknews.com

한국의 역사가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대장금을 본 일본 시청자가 ‘한국이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인 것을 처음 알았다. 이런 아름답고 훌룡한 나라인 한국을 (일본이) 침략한 사실이 굉장히 창피하고 미안하고 부끄럽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야하고 이웃나라에 대해 더 호의적인 감정을 가져야겠다라는 편지를 NHK로부터 받았다. 사극 한편을 수출하는 것이 현대극을 수출하는 것과 다르구나. (우리나라의) 역사와 전통에 관한 모든 것이 수출되는 것을 알았다."

 

   
▲ 대장금을 제작한 이병훈 PD

 <대장금> , <동이> 등을 제작한 이병훈 PD가 지난 22일,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PD연합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사극에 나타난 역사인식’ 심포지엄에서 한 말이다.

사극 한 편으로 한국의 역사를 전 세계로 알릴 수 있다면 그 파급력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형의 가치일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드라마가 해외로 수출되는 '한류상품'으로 발전해가고 있는데 그 현황을 어떠할까?

<주몽>은 드라마 종영 이전인 2006년 8월에 일본, 중국, 홍콩, 필리핀 등 9개국에 수출했고 2010년 이란에서는 80%이상의 시청률을 달성했다. 그리고 현재 방송중인 ‘광개토태왕’도 우리나라에 방영되기도 전에 일본에 이미 수출되기도 하였다.

 

사극의 위력, 고구려사 연구 학자들도 인정

 

김현숙 연구위원은 “역사학계는 이들 드라마 제작진과 방송국, 그리고 작가들에게 일종의 빚을 졌다. 역사학자, 특히 고구려사 연구자들이 당연히 했어야 할 일을 이들이 해주었다고 할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 대중에게 ‘고구려사 알리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었다는 점이다. 대중들의 고구려사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해 있던 순간에, 그들의 지적 욕구와 관심을 해소할 수 있도록, 쉽고 정확하게 쓴 고구려사 관련 책자를 제때 제공하지 못했다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고구려사 전공자들의 책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토론으로 참여한 금경숙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원도 “(학회일로) 베트남에 갔다가 뜻밖에 한류를 접하게 되었다. 전혀 예상을 하지 못했는데, 찌는 듯한 더위임에도 고구려 벽화 전시회를 보기 위해 현지인들이 많이 왔었다. 왜 그렇게 베트남 시민들이 많이 왔는가? 베트남에서 한참 '주몽'이 인기를 끌고 있었기 때문에 고구려 벽화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라고 밝혔다.

사극 한편이 학자들의 논문발표보다 더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점을 학자들도 인정하게 된 것이다.

 

고구려 드라마의 역사왜곡은 한류를 소멸시킬 수도 있다.

 

   
▲ 김현숙 동북아역사재단 책임연구위원
그런데, 이날 김현숙 연구위원은 "국내의 시청자들은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우리 역사를 TV드라마를 통해서라도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외국 시청자들에게는 현대 한국의 문화적 수준과 더불어 한국의 고대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으니,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데 이보다 더 효과적이고 파급력이 큰 매체는 별로 없을 것이다."라고 인정하면서도 고구려 드라마의 역기능을 지적하였다.

김 연구위원은 "그간의 고구려 드라마들에 나타난 선악 이분법적 사고, 과도한 자민족중심주의, 피해의식과 패배의식, 팽창중심·투쟁중심의역사관, 치열한 역사현실로부터 환타지로의 회피 등은 분명 시청자들의 역사인식에 일정부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라며 "이러한 고구려 드라마가 외국으로 수출되었을 때 부정적인 효과도 발생할 수 있다. 지나치게 자민족 중심적 시각에 입각한 역사왜곡이 가져올 파장을 염려할 수 있다. 이것은 모처럼 일어난 한류를 소멸시킬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오히려 혐한 분위기를 조성할 수도 있다."라고 말하였다.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도 민족주의를 내건 역사드라마를 구체적으로 비판하였다.

 

   
▲ 주창윤 교수는 "역사드라마의 세가지 상상력:강한 민족에서 탈민족으로" 주제발표를 했다.

“고구려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이들 드라마들은 ‘제국’(帝國)의 건설을 제시한다. 제국은 패권주의적 용어이다. 1897년 고종이 황제 즉위식을 올린 후 대한제국을 선포하기 이전에, 제국은 우리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다. 더욱이 패권주의적인 관점에서의 제국이라는 것은 근대적인 민족국가의 영토 분할과 경계권을 전제로 해서 착취와 억압을 추구했던 국가들의 또 다른 용어일 뿐이다. 강한 민족주의를 그려내는 역사드라마들은 KBS1을 중심으로〈대왕 세종〉(2008), 〈근초고왕〉(2010~2011), 〈광개토대왕〉(2011~현재)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강한 민족주의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어떤 함의를 제공하는 것일까? 나는 지나치게 민족의 우수성과 자부심을 표현하는 것은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는 길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민족-역사의 감미로운 이야기에 취하거나 그것을 부활시키려는 시대는 타자성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민족의 이름하에 타자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회, 우리민족만 강대하기를 바라는 세계관이 오늘날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고구려 역사드라마인 <연개소문>의 첫 방송 이후,  “연개소문, 픽션 지나쳐 국수주의 우려…정통사극 맞나?”(한겨레 2006년 7월 13일자) 라는 기사를 통해 윤휘탁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원이 “일방적인 역사관은 동북공정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라는 주장과 궤를 같이 한다. 당시 사학자들은 “민족주의 정서에 호소하는 움직임은 사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는 좋지 않다”며 드라마의 파급력을 경계한 바 있다.

이러한 학계의 주장에 대해 이창섭 한국PD연합회장과 이주환 PD는 역사왜곡이란 표현을 정정할 것과 탈민족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한다는 반론을 펼쳤다.

 

역사왜곡이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

 

   
▲ <주몽>을 제작한 이주환 PD

이창섭 한국PD연합회장은 “왜곡이라는 말은 동북공정처럼 뻔한 사실을 어떤 정치적인 목적으로 바꿔서 주장할 때 쓰는 것이다. 역사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을 드라마로 재구성한 것이다. 드라마로 활용하기 위한 역사적 변용의 뜻으로 ‘극적 변용’을 써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고구려 드라마 ‘주몽’을 제작한 이주환 PD는 “한국의 역사학이 일제강점기를 맞으면서 실증적인 비판을 너무 당연시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주관적인 역사를 가질 수가 없었다. 근대화에 치중하다보니깐 과거 70년대 미신타파 등과 같이 우리에게 소중한 것(역사와 문화)을 잃어버린 것이 많았다. 지금의 민족중심주의 사극 드라마가 많이 만들어지는 현상은 긍정적인 면에서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다. 과연 동아시아 역사도 원래 객관적으로 규명되었는가? 알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런 면에서 너무 탈민족만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PD는 “중국을 대표하는 소설 삼국지가 지금 이 시대에 창작되었다면 과연 클래식(고전)이 되었겠는가?”라고 질문하며 “역사로서의 삼국지와 소설로서의 삼국지는 굉장히 많은 사실과의 괴리감이 있다고 중국 학자들도 인정하는 것으로 안다. 그런 점에서 우리도 그런 과정을 하지 않으면 과연 우리도 삼국지처럼 세계인들의 호소력을 갖는 역사물을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사극에 관한 주장과 반론 못지 않게 '역사'란 무엇인가 그리고 사극의 대중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견이 나와 청중의 관심을 끌었다.

 

문제는 시험이 역사를 망친 것!

 

   
▲ 토론자로 나선 김기봉 교수

토론자로 나선 김기봉 경기대 교수는  기존의 지식 교육의 역사를 비판하는 발언을 하였다.

 

“문제는 시험이 역사를 망친 것이다. 뭔가를 따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실을 왜 알아야되는가라는 문제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과거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결국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실의 의미이다.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사극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시대가 정답이 없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정답을 아느냐하면 모른다.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역사를 통해서 사유하는 것이고 그 사유할 수 있는 좋은 실험의 장이 저는 역사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이순재 씨, "역사를 통해 오늘을 말할 수 있다"

 

   
▲ 청중석에서 소감을 말하는 배우 이순재 씨.

이날 사극에 직접 출연했던 배우 이순재 씨가 참석해서 주목을 받았다. 종합토론이 마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은 배우 이순재 씨는 사회자 이강현 PD가 청중을 대신해서 소감을 달라고 요청하자 흔쾌히 마이크를 잡았다.

 “역사물을 왜 합니까? 살아있는 역사를 통해서 오늘날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하는 것이다. 역사드라마가 시청률이 높은 이유는 거기서 나오는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관과 자질 그리고 인간애를 바탕을 두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동을 주는 것이다. 저는 우리나라의 역사는 민초들이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역사의 어려움을 견뎌낸 민초들을 조명했으면 한다. 그것은 얼마든지 픽션이 가능하다. 역사학자들도 모른다. 역사물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소재가 무한히 많다."

마이크를 돌려받은 이강현 PD는 행사를 마무리하며 “사실 드라마 PD의 입장에서 업무를 배정하다보면 점점 사극을 지망하는 PD가 많이 줄어든다. 사극을 찍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자기가 하고 싶고 익숙한 멜로드라마를 연출하고 싶어한다. 저희들 또한 선배님의 대를 잇는 후배들을 발굴해야 되는데, 현업자의 숙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라며 “사극의 입장에서 극적 상상력만 의존해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우리 드라마와 우리 역사와 문화를 평가하는 외국인들을 감안하면 신중한 자세가 필요함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행사는 끝날 시간인 6시를 훌쩍 지났는데도 청중의 과반수가 자리를 지켰다. 이번 행사를 지켜보며 김기봉 교수가 "역사는 사실이므로 진실인데 반면 드라마는 허구기 때문에 거짓이라는 근대 사실주의 이분법 을 해체하지 않는 한, 역사가와 사극제작자의 소통은 불가능합니다."라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역사가와 사극제작자가 공개 석상에서 서로의 주장을 듣고 대화의 채널을 열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