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에 나온 미국의 두 얼굴 그리고 한국의 故 이수현
지난 4월 27일 MBC 9시 뉴스에서는
미국 뉴욕에서, 강도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죽어가는 시민을
행인들이 못 본 채 지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남부에서는 살인적인 토네이도가 열두 명의 목숨을 앗아간 가운데,
세 아이의 엄마 '니키 카펜터'는 토네이도가 시속 214km의 속도로 닥쳐오자,
매트리스로 어린 아이들을 덮은 뒤 자신의 몸으로 감쌌다고 합니다.
물론 니키 카펜터는 목숨을 달리 하였지만, 세 명의 어린 자녀는 구한 것입니다.
이 두 뉴스를 접하면서 미국의 두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강도가 한 여자에게 다가가 위협하려는 것을
구하려다가 칼에 맞고 쓰러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은 그 여자를 전혀 모르는 사이라는데 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비켜갔던 25명처럼 그냥 모른척 지나쳤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토네이도라는 위협앞에 어머니가 자식을 구하는 것은
인지산정입니다. 왜냐하면 혈육이고 자신보다 자식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이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강도의 칼에 맞고 쓰러진 의인 주변에 사람들이 넘쳐났을 것이고
서로가 의인이 되어 강도를 잡으려 뛰어갔을 것입니다.
그것은 타국 일본에서 술취한 행인이 지하철에 떨어진 것을 보고
몸을 던져 구한 뒤 목숨을 달리한 故 이수현님의 피가 우리에게도 흐르기 때문입니다.
뉴욕 시민의 인터뷰가 가슴을 찌릅니다.
"사람을 그냥 죽도록 그렇게 내버려두다니. (미국에는) 더 이상 도덕도 양심도 없는 것 같아요."
무엇이 선진국일까요? 무엇이 강대국일까요?
미국이 교육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한국 보다 위대하다고 말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미국이라는 나라는 아프리카 원주민 보다 못한 정신상태를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단정짓기는 그렇다 하더라도, 윤리시험에서 백점 맞더라도
강도와 싸우라는 것도 아니고 피를 흘리며 쓰러져가는 같은 국민을 25명이나 외면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미국민이 같은 나라에 살고 있지만 서로 달리 살아가는 개별적인 나라.
결코 공동체로서 함께 고통을 나누기가 너무 어려운 나라.
바로 그 점을 말해줍니다.
공동체의 위기는 바로 이와 같은
아주 작은 사건에서도 공동체의 의식수준을 보여줍니다.
만일 당신이 전혀 모르는 사람이 강도에 위협을 당하고 있습니다
선뜻 나설 수 있을까요?
그것은 저도 망설여지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전혀 모르는 사람이 강도의 칼에 맞고 피 흘리며 쓰러졌다며
선뜻 나서서 119를 부를 수 있을까요?
그것은 당신과 저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물론 미국이라는 사회만 그럴 것은 아닙니다.
이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자본주의와 개인주의 폐해가 고스란히
공동체 위기이자 양심의 위기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흥부가 다리 부러진 제비를 고치는 측은지심이 그 어느때보다 필요합니다.
다리를 절뚝거리던 들소가 사자의 공격에 목덜미가 물리고 위협에 처했을 때
갑자기 들소들이 달려와서 구해준 자연 다큐가 기억이 납니다.
동물도 같은 종족을 구하는데,
하물며 이성과 윤리로서 동물과 다르다고 자부하는 인류가
서로를 돕지 못하고 있으니 동물과 무엇이 다르며 실천되지 못하는 이성과 윤리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인간성 회복운동이 그 어느때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