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에와의 한판승
# 이 글은 이승헌 총장 수행원이 식사를 함께하면서 남긴 글입니다.
요즘 총장님은 다이어트 중이십니다. 지난 몇 달간 칼로리 제한으로 식사량을 조절한 덕분에 눈에 띄게 날씬해지셨지요. 벨트구멍은 2개를 더 뚫었고 턱 선도 살아나 젊은 시절 흑백사진에서 봄직한 날렵한 모습도 엿볼 수 있습니다.
오늘 저녁 메뉴는 여느 때처럼 간소했습니다. 찹쌀현미에 검은콩을 섞어 지은 밥과 김, 간장, 김치. 후식으로 알로에 몇 조각을 곁들였습니다. 알로에는 껍질을 벗기면 안에 미끈미끈한 액이 나오고 투명한 몸체가 드러나는데, 그것을 먹기 좋도록 직사각형으로 잘라서 꿀을 살짝 둘러 접시에 담았습니다. 쟁반 위에 밥공기와 반찬, 후식까지 모두 올라가면 식사준비 끝!
총장님은 젓가락으로 김을 집어 밥을 동그랗게 싼 다음 간장에 찍어 드십니다. 중간중간 김치도 곁들이시죠. 밥공기의 3분의 1만 채운 밥은 금방 바닥이 드러납니다. 이제 후식을 드실 차례인데 알로에는 미끈거려서 일반적인 젓가락 사용법으로는 하나도 제대로 집기가 어렵습니다. 포크로 집거나 접시를 들고 젓가락으로 밀어 넣어야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총장님은 포크는 무시한 채 계속 젓가락을 들고 알로에에 집중, 또 집중하십니다. 알로에는 젓가락만 갖다 대면 요리조리 날렵하게 빠져나갑니다. 한번은 거의 다 집었는데 싹 빠져나가서 알로에가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총장님은 “이게 골프보다 더 어렵다”며 웃으시더니 다시 전열을 가다듬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터득하신 듯 유쾌한 목소리로 방법을 전수해주십니다.
“자, 여기 봐. 무엇보다 각도가 중요해. 젓가락을 수직으로 세우지 말고 요렇게 수평으로 뉘어서 알로에를 들어 올리고 젓가락 사이에 끼워. 이때 힘 조절이 중요해. 너무 세게 힘을 주면 알로에가 도망가니까 살살 달래듯이 해서 타이밍을 딱 맞춘 다음, 이렇게 들어 올리는 거야.”
총장님은 조심조심 접시를 비워나가셨는데 유독 마지막 한 조각에서 또다시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몇 번 하다가 안 되면 그냥 남겨도 될 텐데 정말 마지막까지 맹렬한 씨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빠른 속도로 젓가락을 알로에 가운데로 쿡 찔러 넣고, 나머지 한 젓가락으로 옆구리를 잡아채더니 기어이 입안으로 집어넣으셨습니다. 총장님의 집요한 추적에 요리조리 몸을 피해 달아나던 알로에가 결국 항복했습니다.
총장님은 한바탕 게임이라도 치른 듯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게 내 인생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몇 번 하다가 안 되면 포기하거나 젓가락 대신 다른 방법(즉 편법)을 사용했겠지만 그건 룰이 아니다. 정확히 젓가락으로 집어 먹어야겠다고 했으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좀 전까지 코믹하게 펼쳐졌던 상황이 마치 한편의 감동드라마처럼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어려움과 장애가 있었지만 그것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 새로운 것을 창조해 오신 총장님의 인생역정이 그 말씀 속에 모두 녹아있었거든요. “어떤 절망 속에서도 포기 하지 않고, 되는 방법을 찾아서 해왔다”는 총장님 말씀이 긴 여운으로 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