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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러브레터], 아름다운 추억의 풍경속에 담겨진 낭만에 대하여..

하늘세상이다 2010. 4. 30. 16:01
이와이슈운지 감독의 95년작 [러브레터]는
나카야마 미호가 1인 2역을 멋지게 소화해내는 연기력과 함께,
일본의 설산으로 펼쳐지는 순백의 영상미가 돋보였던 작품이다.

내러티브의 중심축은 산에서 떨어져 죽고만 이츠키를 사랑하던 히로코라는 여주인공이 보낸 편지에 답장이 돌아오는데서 비롯된다. 여기서 편지가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만남을 통해 
현실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한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즉 편지에 담겨진 히로코의 마음이 기억의 숲에 있던 이츠키를 또 다른 인연의 법칙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개봉하고 4년여만에 한국극장에 개봉되었지만,
다른 일본작품들에 비한다면 돋보인 흥행을 가져왔다. 그것은
아마도 한국에서 러브스토리를 이렇게 풍경처럼 아름답게 그려내는 작품들을 만날 수 없었다는 배경도 한몫했으리라.

이와이슈운지에 버금가는 한국영화의 감독은
 [비오는날의 수채화]로 시작했지만, 오랜공백기를 거쳐 새롭게 도전한 장르로 [엽기적인 그녀] 그리고 최근의 [클래식]에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곽재용감독이다.

[클래식]의 내러티브는 그렇게 탄력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한국의 영상미를 환타지하게 그려내는 능력은 [러브레터]에 뒤지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도 [러브레터]와  비슷한 영상미로 [가을동화]나 [겨울연가]가 TV시리즈로 각광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러브스토리를 다루고 있는 대부분의 작품들의 감독이 아이러니컬하게도 남자들이라는 사실이 주목된다. 그것은 곽재용감독의 [엽기적인 그녀]가 대학생을 주인공으로 설정했지만 대부분의 관객이 여고생들이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하기 때문이다. 결국 어른들의 현실주의적 관점에서는 추억이 그리는 낭만성이 유치하게 비추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러브레터]에서 말 한마디 못하는 이츠키가  전학가면서 그녀에게 프루스트의 책을 반납한다. 여기서 프루스트의 책명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데 상당한 의미가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것은 [편지]를 매개로 잃어버린 이츠키의 마음이 풍경화처럼 그려지는 과거로의 여행을 통해 히로코가 다시 찾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를 부르러 간다. 이미 산이되어 말이 없는 이츠키를 있는 힘을 다해 잘 지내고 있냐(おげんきですか)고 소리친다.
 
누구에가나 있음직한(혹은 있고싶은) 첫사랑에 대한 풋풋한 기억은 청소년기의
통과의례처럼 성장 스토리를 간직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그러한 추억의 사랑은 우리들에게 좀처럼 잊지 못하는 계절의 그리움으로 가슴에 남아 편지를 주고 받는 1인 2역의 [나카야마 미호]의 모습에 금방 동일화되는지도 모른다.
 
나카야마 미호처럼 단발머리 찰랑거리며 웃음짓던 교복입은 그녀는 10년이 지난 뒤에도 만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에 대한 아련한 기억들은 굳이 성급한 만남으로 돌아서기보다, 히로코처럼 주소 없는 편지로 기억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더 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10년이 지나도, 그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그녀의 단발머리와 돌아서며 웃음짓던 모습은 여전히 나의 기억에 파문을 일으키게 한다.
 
인연은 소중하고, 떠나고난 자리에는 그리움만 남아도
돌아오는 길은 그리 아쉽지만은 않다.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랑은 또 다른 만남으로 완성된다고 믿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