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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하느님] 시대의 아픔은 나의 아픔
하늘세상이다
2010. 4. 30. 14:48
어제 꿈을 꾸었다.
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눈물이 계속 났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실이
나에게는 팔과 다리를 잃은 것보다
더 아팠고, 미칠듯이 괴로웠다.
두 눈을 뜨기 전까지
두 눈을 뜨기 전까지
하나뿐인 나의 어머니를 잃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너무나 생생하였다.
이불을 거둬내고 샤워실로 가기까지도
정신이 혼미했다. 정말일까? 이것이 꿈이 맞을까?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면
정말로 나는 뿌리잃은 나무처럼
허무하게 쓰러져서 바닥을 움켜쥐고
눈물만 흘릴 것 같았다.
오늘 하루
나는 작가 조정래의 '오 하느님'을 읽었다.
그리고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2005년 12월 11일과
18일 SBS스패셜에서 방송된 '노르망디의 코리안'을
단숨에 보았다.
단숨이다.
그렇다.
우리에게 '숨쉴 수 있다는 거'
그것만큼의 자유와 행복이 어디있을까?
그런데, 우리의 시대적 불운아
노르망디의 코리안(작중인물 신길만)
에게 숨쉴 자유도 허락되지 않았다.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작가가 '주인공의 삶이 기가 막히고 통렬해
소설을 쓰면서 마음으로 많이 울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정말로 울 수 있어야 한다.
역사란 서양학자가 말한 과거와 현재의 대화 수준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의 만남인데 눈물없이 어찌 만난단 말인가?
일본군에 징집되어 소련군에 포로로 독일군에 포로로
그 기나긴 생명을 역추적해가는 이야기는 추리물이 아니다.
너무나 가슴 아픈 인생역정이고 우리의 삶인 것이다.
중학교 때, 소설 '빠삐용'을 읽으면서
그가 자유를 찾기 위해 도망에 도망을 거듭한 모습보다도
나의 조상, 나의 선배, 나의 형
'신길만'의 인생역정은 민족과 인류를 넘어
20세기의 전쟁으로 죽어간 1억의 영혼들의 아픔으로 가슴에 와닿았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
고향을 돌아가지 못하고 떠돌던 '신길만'의 슬픔
그것은 같았다. 아니 연결되어있었다.
역사가 글자가 아니라
가슴으로 만나게 한 교육이 있었다.
그 교육에서는 꼭 한장의 사진을 보여준다.
깡마른 체구에 두 눈빛만은 살아있는 무명독립운동가의 사진
그의 눈빛을 보노라면
일제강점기의 온갖 핍박에도 여름 옷 하나로
겨울속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을 바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와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노르망디의 코리안도 시대의 아픔으로 봤을때
운명적으로 슬픈 영혼인 것은 사실이다.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꿈에서의 슬픔이 현실에서의 슬픔이 되고
소설속의 슬픔이 책장을 쥐고 있는 나에게로 전이되는 것 같다.
역사는 늘 살아남은자, 이긴자의 기억으로 어린시절부터 교육되지만
작가 조정래처럼 잊혀진 자, 이름도 모르는 무명의 영혼들도
다큐멘터리로든 소설이든 영화이든 되살려내는 것은 정말로 중요하다.
그것이 후손으로서의 도리이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잃은 슬픔과 고통은 누구나 마찬가지이므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이든 그렇지 않고 포로의 삶으로
연명하다가 죽더라도 생명이 고귀한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