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인물을 찾아나서는 여행에 동참하며
독립운동의 아버지라는 타이틀이 붙혀진 나철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박성수님의 평전은 이미 김성수가 박사논문으로 오랜 연구끝에 내놓은 [함석헌 평전: 신의 도시와 세속 도시 사이에서]라는 책과 같은 분류에 속한다고 생각된다. 두 분 다 독립운동에 많은 역할을 담당하였지만, 함석헌선생은 기독교를 초월한다원론적인 사상으로 많은 연구가 된 것에 비해 나철선생은 대종교라는 세 글자 외에는 그다지 많은 인상을 대중들로부터 받지 못한 것이 나역시 책을 읽으며 상당부분 동감되었다.
우리가 잘 아는 주시경선생이나 윤봉길의사 그리고 김좌진장군에 이르는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한결같이 단군을 모시는 대종의 신자라는 사실은 의외로 모르고 있음이었다. 그래서 박성수님의 문맥에 발을 맞춰가며 읽어가면서 정말로 나철선생이 이렇게 선구자적인 행동과 많은 제자들이 독립운동에 투신할 수 있도록 솔선수범하였다는 사실에 몇 번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잘 알겠지만, 영화 [2009로스트메모리즈] 를 떠오르지 않더라도 윤봉길의사나 안중근의사는 일본인들에게 [테러리스트] 임이다. 하지만,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이 일본인에게 테러를 자행하는 부류에 지나지 않다고 볼 수 없고 중동의 미국을 향한 무자비한 테러범과 다른 점은 그 사해동포를 향한 민족과 인류의 뜨거운 사랑이요 이것은 건국이념이자 교육이념이기도 한 [홍익인간 이화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백범선생도 나의 소원이란 글에서도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홍익인간이라는 우리 국조 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한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어쨌든, 독립운동의 아버지로 표상되는 나철선생의 걸어온 삶과 지향했던 가치 그리고 그가 현재의 후손들에게 주는 의미 등을 종합적으로 짚어보는 박성수님의 책은 을사조약의 치욕이 흐른지 100년이 다 되는 지금에도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과 열강들의 침략야욕에 또 한번의 굴욕을 겪어야될지도 모를 우리에게 참 많은 교훈과 정도正道를 보여주고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무엇보다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는 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느낀바가 가장 컸던 것 같다. 우리가 잘 아는 고종황제의 특사로 네덜란드 헤이그에 파견된 이준열사가 평화 회의의 문턱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주위의 언론에만 호소하다가 결국 자결하고 만 사건은 누구나 잘 아는 역사다. 하지만, 나인영(대종교 중광하고나서 나철로 이름이 바뀜)선생이 일찌감치 동지 오기호와 함께 줄기차게 일본의 황제나 의식있다고 생각되는 일본의 유명인사들에게 호소를 하였다는 점이 뒤늦게 알게 된 점이 놀랐고 그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 계기이기도 하였다. 이것은 부록에 일황에게 올린 글이나 이토 히로부미에게 주는 글에서 확연히 알 수 있는 부분인데, 단순히 감정적인 흑백논리로 일본과 싸운 것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이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음에 그 철학의 깊이는 우리 민족이 낳은 독립운동가들의 위치를 격상시키고도 남음이다.
개인적으로 [6장 대종교와 독립운동]과 [7장 일제식민사관과 민족사관]에 대한 부분이 가장 집중적으로 읽게 되지 않았나싶다. 물론 그 전 5장에서 나철선생이 구월산에서 의미심장한 예언시만 남기고 끝내 순교하고 말아 안타까움이 매우 컸다. 어쨋든 그의 자결이 개인의 죽음이란 한계의식이 아니라, 대종교 신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독립운동의 불씨를 지피는 계기였음에 그의 예언시가 신빙성여부를 떠나 역사적인 무게를 가늠할 수 있었다.
특히, 민족사학의 선구자로 신채호선생을 비롯하여 박은식과 문일평 그리고 정인보에 이르러 민족사관이 대성하게 된다는 역사줄기를 더듬어 가다보면 그들이 해놓은 업적은 이루 말할 수 없음이고 나철선생의 순교가 제자를 통한 부활로 바른 역사와 한글을 지켜내고 외부로는 독립운동의 거침없는 힘이 된 것이라 생각되었다.
대부분의 평전이 가진 한계이자 미덕인 인물중심으로 인하여 주변의 인물과 배경이 타자로 가볍게 다루어질 수도 있겠지만, 나철선생, 개인의 삶과 죽음 사이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제자에 이르기까지 독립운동의 기간동안 어떠한 역할과 업적을 세웠고 평가될 수 있는지도 담아내고 있기에 그 텍스트의 질과 양은 상당하다고 생각된다.
나라를 빼앗긴 일제시대에 빈부귀천이나 종교를 떠나 모두가 한마음으로 독립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던 인물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후손들에 의해 바르게 평가되거나 복원되지 않고 있음에 안타까운 마음 가득하다. 단순히, 역사수업이 왕조의 연대나 사건을 암기하는 수준에 있다면 그것만큼 어리석고 의미없는 역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역사는 나이를 떠나 자신의 뿌리를 바탕으로 미래를 향해 줄기를 뻗어나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도 마땅히 바르게 공부되고 재창조의 활용으로 자리매김해야된다는 생각이다.
외세에 의해 광복을 맞이했지만, 그렇게 남에 의해 잘못 매게된 첫 단추는 이후 이승만-박정희-전두환에 이르는 삼대독재에 의해 불행한 근현대사를 수많은 의사들의 죽음을 담보로 느리고도 거칠게 걸어왔음이다.
그래서, 독립운동의 아버지로 나철선생의 위치는 그만큼 중요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인상깊은구절]
대종교는 또 한글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주시경을 비롯하여 이극로, 최현배 등의 한글학자는 모두 대종교 신자들이었다. 김두봉은 특히 나철을 따라 구월산까지 수행했던 독실한 신자였다. 주시경은 우리글을 한글이라 명명한 인물로서 1924년 7월 27일 임종할 때까지 오로지 한글의 대중화를 통한 언어민족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헌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