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이 아닌 비전서라는 점에 동감하며
한바다의 3000년의 약속이란 책은 아는 사람의 소개로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제목만 봐서도, 무언가 현실과는 다른 신비로운 세계를 그려나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게 사실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한바다가 유명해진 것역시 지난 대통령선거와 2002년 한일월든컵 4강진출에 대한 예언에서 비롯되어질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본격적으로 읽게 된 것은, 지난 목요일에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고 창밖을 바라보다가, 집어들게 되었는데 도착하고나서도 손에서 놓지 않을만큼 신비로운 몰입에 빠져들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책은 시중에 많이 나와있고, 나 역시 이와 유사한 책들을 읽은 적이 많다. 하지만, 내가 몰입한데는, 2010년에 미국서부로부터 시작된다고 하는 지구대변혁에 대한 호기심이나, 향후 남북관계에서 멀게는 우주인에 대해서까지 광범위하게 다루는 데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未來가 아닌가 중요한 것은, 우리가 내딛고 살아가는 현재에 있는 것이고 이러한 책이 얼마나 활용적이고 생산적인 비전을 담아내느냐에 달려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살아오며 품고 있던 호기심과 질문들을 여기 역자가 대신 저자에게 묻고 대답하는 과정속에 함께 참여하며 이해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여러번 읽으며 곱씹어볼 수 있었던 장은 아무래도 [6장 예언이란 무엇인가]이다. 이는 지금까지 수도없이 쏟아져나왔던 비슷한 예언들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도 호기심 가득히 접해보지만, 진정으로 예언이 우리에게 무엇이며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는지에 대한 생각은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어차피, 정보해석은 그 사람의 이해수준에 달려있음이다. 다른말로 의식수준에까지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역자 스스로도 한바다의 깊은 경지에서 쏟아내는 말들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심정을 토로하는 점에서 책의 솔직함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왜냐하면 좋은 책이란 일방통행의 닫힌 장이 아닌, 누구라도 끼어들고 여러 생각도 기웃거리며 놀 수 있는 열린 마당으로 자리해야되기 때문이다. 이는 마지막 장에 한바다역시 자신의 예언이 맞든 틀리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희망을 품게 하는 데 있다고 하고 있다. 이 말이 맞으니, 믿어라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죄의식수준으로 독자들을 조정하며 우상으로서 고집부리는 그런 저급의 책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어차피, 책을 읽는 것역시 내 삶에 큰 나침반으로 와닿지 않더라도 가슴이 따뜻해지거나, 아하 그렇구나라는 깨달음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10년후에 이 책에서 말해주듯이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듯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예전에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1999년 7월에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가 믿고 안 믿고는 이 책을 좋다 안 좋다고 규정하는 것처럼 다 자기 마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즈음에 나오는 인터넷과 조폭, 엽기문화에 대해서 깨달았다는 한바다의 독특한 해석도 한번쯤 읽어볼만 했다. 특히, 저자는 한국에 희망이 있음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질문던지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처럼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희망은 품케하는 책인 것 같다. 그것은 현실로 불러일으키는 것 역시 각자의 선택과 행동에 달려있음은 여전히 말해주고 있으면서, 이와 유사한 책과는 다른 면모가 발견된다는 점에서 한바다의 3천년의 약속에 대한 평가는 보통에서 별하나 더 붙인다.
인상깊은구절
예언은 아직 물질로 나타나지 않은, 영적인 세계에 있는 운을 읽어내서 밖으로 드러내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래에 다가가서 배울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자신의 잠재의식과 현재의식을 하나의 조화된 체계로 만들어주는 것이지요. 이것이 내가 예언을 하는 근본적인 목적입니다.